유권자들이 무슨 죄가 있나
유권자들이 무슨 죄가 있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0.09.20 18: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괴산군이 지역구인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과 관련한 우울한 보도들이 잇따르고 있다. 유권자로부터 위탁받은 권한을 사익 추구에 악용한 의혹이 짙다는 기사들이다. 지역구에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지만 배신감과 허탈감을 토로하는 주민도 늘고있다.

지난 8월에 이어 최근 중앙일간지와 방송에 보도된 핵심 내용은 이렇다. 박 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 위원으로 재임한 5년여간 그의 가족이 경영하는 3개 업체가 국토부 산하기관의 공사 773억원 어치(25건)를 수주했다. 해당 기업들은 국토교통위 피감기관인 서울시와 산하기관으로부터도 8년간 400억원대 공사를 수주했다. 이 기간에 서울시에 신기술들을 제공하고 371억원을 받기도 했다. 경기도와 경북도에서도 487억원어치 사업을 따냈다. 전국에서 수주한 금액을 모두 합치면 2000억원이 넘는다.

민주당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의원직을 수행했다”며 박 의원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고, 일부 시민단체는 부패방지법 위반 등 혐의를 걸어 경찰에 고발했다. 피감기관서 이권을 챙겼다는 이해충돌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데다 수주금액이 갈수록 커지면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박 의원은 “가족회사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는 짤막한 입장만 내놓은 상태다. 그러는 동안 그에 대한 비난의 수위는 `피감기관으로 부터 뇌물을 받은 것과 다름없다'며 형사범으로 몰아갈 정도로 높아졌다. 그를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제기된 의혹이 매우 파렴치한 만큼 저간의 보도들이 이런 혐의들을 충족시켰는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냐”는 지역구 유권자들의 물음에 응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언론에서 이해충돌 의혹을 제기하며 거론한 대부분 사업들은 해당 회사들이 공개경쟁 입찰을 통해 수주했다. 발주 기관이 특정 업체에 공사를 챙겨주려면 그 업체에만 유리한 특별한 조건을 달아 입찰을 집행하는 등 변칙을 동원해야 한다. 특혜시비와 형사처벌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기사들에는 기관들이 어떤 방식으로 박 의원 관련 기업에 공사가 낙찰되도록 도왔는 지를 밝히는 구체적인 예시가 별로 없다.

박 의원이 자리를 사익 충족에 악용했다는 의혹이 객관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가 국토교통위원을 맡기 전과 후로 나눠 해당 기업들이 올린 수주실적을 비교해야 한다. 예컨대 박 의원 관련 3개 기업이 서울시에서 8년간 수주했다는 400억원대 공사에 이해충돌 의혹을 제기하려면, 그 이전 8년간 이 회사들이 서울시에서 올린 실적이 상대적으로 저조했음을 밝혀야 한다. 박 의원이 국토교통위원을 맡은 후 관련기업의 수주가 유의미하게 늘어났다면 그의 개입을 의심할 수 있지만, 줄거나 별반 차이가 없다면 설득력은 떨어진다. 그러나 이 회사들의 과거 실적을 다룬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경찰 수사를 지켜볼 일이다. 사실이 진실을 호도할 수도 있기에 하게된 변론은 여기까지다.

신고재산으로 따지면 박 의원은 21대 국회의원 중 두번째 부자다. 내리 3선을 한 성공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보도에 따르면 국회의원 당선 후 가족들이 나눠 경영하는 다수의 건설관련 기업들은 호황을 구가한다. 아파트 3채를 비롯해 곳곳에 소유한 부동산도 288억원에 달한다. 부와 명예가 충분히 채워졌음에도 가속을 멈추지 않는 치열한 삶이다. 서민들은 이 억척스러움을 탐욕이라고도 부른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살림살이가 더 피폐해진 일반 국민에겐 좌절감과 상실감을 안긴다. 언론에 제기된 의혹들이 국민들로부터 전혀 정상 참작을 받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간 누려온 기회들을 나누고 줄여야 할 위치에 이르렀음을 박 의원 스스로 깨닫지 못한 탓이 크다.

박 의원 관련 기사에는 지역구 유권자들을 조롱하는 댓글도 적지않게 달린다. 그를 뽑은 지역 유권자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수모를 당하는가. 침묵이 더 길어지면 유권자에 대한 무례로 간주될 것이다. 아직도 박 의원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고있는 순박한 지역구 유권자들을 봐서라도 신속하고 충실한 해명에 나서기 바란다.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하고 억울한 부분은 구체적으로 소명한 후 유권자의 판단을 구하라.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친인척 기업활동과 부동산 축적에 대한 결단도 따라야 할 것이다. 자신으로 인해 지역 유권자들이 겪는 모욕감을 씻어낼 능력과 자신이 없다면 사업가로 돌아가는 것이 옳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