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불모지 탈피 `실타래 풀었다'
제조업 불모지 탈피 `실타래 풀었다'
  • 엄경철 기자
  • 승인 2020.09.17 1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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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경제 100년사-소금배에서 KTX까지
⑥일제강점기 충북경제-잠사업
청주·충주서 제사공장 운영… 생사 수출로 외화 수입
남한제사… 1929년 청주서 지역 최대 규모 공장 설립
해방 후 상호 변경·이전… 중국과 경쟁서 밀려 쇠락길
충주선 일본인이 제사공장 운영… 지역여성 생산 투입
누에 넋 달래고 양잠 풍년기원… 잠령제 현재도 이어져
1940년대 충북의 양잠농가에서 채반을 이용한 누에치기 모습. /충북도 제공
1940년대 충북의 양잠농가에서 채반을 이용한 누에치기 모습. /충북도 제공

 

일제강점기 충북에서 잠사업이 성행했다. 지역에서 생산된 생사(生絲)는 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인 품목이었다.

누에를 쳐서 생사를 생산하는 산업인 잠사업은 두 가지로 나뉜다. 뽕나무를 재배해 누에를 쳐서 고치를 생산하는 양잠업(養蠶業)과 생산된 고치를 원료로 공장에서 생사를 생산하는 제사업(製絲業)이다.

일제강점기 양잠업이 발달하면서 청주, 충주에 제사공장이 운영됐다. 제사는 누에가 만든 고치를 생사(生絲)로 만드는 작업이다. 직물의 원료로 사용되는 생사는 정련(精練)이나 연사(撚絲)로 가공하지 않은 상태의 고치에서 뽑아낸 실이다. 공정은 불량 고치를 제거한 후 고치 실이 풀리기 쉽도록 90~100℃의 끓는 물에 삶아 목적하는 굵기에 따라 고치 수를 조정하고, 실 끝을 한 가닥으로 합쳐 얼레에 켜 감는다.

누에고치를 통해 직물원료인 실을 생산하는 공정과정에서 인력이 필요한 노동집약산업이었다. 그만큼 제사공장에는 많은 지역민들이 현장에 투입됐다. 당시 신문 등에 의하면 1920년대부터 청주와 충주에서 운영됐던 제사공장에는 많은 여성들이 생사생산현장에서 일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의하면 당시 생사공장 남한제사(南韓製絲)는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에 있었던 향토기업이다.

남한제사는 일제강점기 일본 군시(郡是)제사㈜의 조선 분공장(分工場)이었다. 청주공장은 1929년 설립됐다. 제조업 불모지 시절이었던 당시 군시제사㈜ 청주공장은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생사를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청주군시공장은 해방 후인 1949년 12월 27일 남한제사㈜로 새롭게 출발했다. 이후 사직동 남한제사공장은 문을 닫았고 그 부지에 청주시외버스터미널이 들어섰다. 남한제사공장은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100-8 청주공업단지 제1단지로 이전해 남한흥산으로 상호를 바꿨다. 이 회사는 1978년 기준 생사생산 25억1700만 원, 부산물 2800만 원, 수출 490만7000달러, 내수 9200만 원을 기록하는 등 명맥을 이어갔다. 하지만 중국과의 수출경쟁에서 경쟁력을 잃어갔다.

경쟁력 상실로 쇠락의 길을 걷던 남한흥산은 1986년 8월 9일 청주시 흥덕구 송정동 2-1번지 청주공업단지 제3공단 내에 공장을 신축, 이전한 후 업종을 전환했다. 당시 수정진동자를 생산했으나 2000년 10월 빛샘정보통신에 18억4500만 원에 매각됐다.

남한제사는 해방 이후 청주에서는 유일한 기업체였다. 하지만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려 2세 체제에서 막을 내렸다. 반세기 넘는 기업 역사를 가진 남한제사의 몰락은 한 기업이 창업에서 발전하기까지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충주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오가와 제사공장이 있었다.

당시 발행된 신문들은 제사공장 운영에 관한 사항, 잠업장려정책, 관련 행사들을 다뤄 사회경제적으로 잠사업이 주요 업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매일신보(1923년 10월31일)는 `잠사품평회 개최로 청주 활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충청북도잠사풍평회가 지난 19일 오전 10시에 청주시내 소학교에서 열렸다. 회장(행사장) 주위에 모인 군중이 오륙천명 이상에 달했고 가을 아침 산들 한 바람에 나부끼는 오색만국기와 장막은 실로 며칠 전부터 준비해온 것으로 장관이었다”며 당시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잠사품평회 행사장 분위기를 전했다.

중앙일보(1932년 11월23일)는 `충북의 잠령제(蠶靈祭)'제목의 기사에서 “조선잠사회충북지회에서는 충북도내에서 희생된 백억 가량의 가련한 잠령(蠶靈)을 위안코자 19일 오후 1시 청주원잠종제소 내에서 공양의 제전을 거행하였는데 충청북도에서는 처음 보는 일이라 한다”고 보도했다. 잠령제는 지금도 매년 열리고 있다.

잠령제를 열 정도로 잠사업은 충북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엄경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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