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졸리면 쉬랑께"
"뭣이 중헌디! 졸리면 쉬랑께"
  • 오영근 기자
  • 승인 2020.09.17 1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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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오영근 선임기자
오영근 선임기자

 

몇 년 전 시중에 회자됐던 에피소드 한 토막이다.
경부고속도로에서 옥천 IC로 접어들면 나들목 정면으로 자그마한 산봉우리가 나타난다.
말이 산봉우리이지 조금 높은 둔덕으로 보는 게 맞을 성싶다. 그래도 그 근방에서는 눈에 제일 잘 띄는 명당(?) 자리였다.
어느 날 그 봉우리 꼭대기에 ‘자치 1번지, 옥천’이라는 홍보 문구가 등장했다.
화초목으로 꾸며진 고딕체의 한글 문구였다.
명당자리답게 그 문구는 나들목 관문을 빠져나온 운전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사달이 났다.
자치 1번지, 옥천이란 문구중‘치’자(字)의 윗부분 획이 봉우리 뒤로 넘어가 눈에 보이지 않게 돼버렸다.
상상을 해보라. 무의식중 이 문구를 본 운전자들이 이 홍보 문구를 어떻게 읽었을지를.
비딱한 생각이 아니더라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황당한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자치1번지 옥천 사건(?)은 곧 글자가 수정돼 해프닝이 됐지만 한동안 지역사회에 웃음거리로 회자됐다.
자치단체는 물론이고 어느 기관이든 단체이든 캐치프레이즈나 슬로건, 캠페인을 만들어 사용한다.
저마다 그 조직의 정체성과 특징을 알리기 위함일 것이다.
충북도는 ‘생명과 태양의 땅, 충북’과 ‘함께하는 도민, 일등경제 충북’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청주시는 ‘함께 웃는 청주’란 캐치프레이즈를 사용한다.
충북도교육청은 ‘교육의 힘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게 슬로건이다.
모두 자치단체와 단체장이 추구하는 정책이나 신념을 화려한 단어와 표현을 섞어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모든 캐치프레이즈와 슬로건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없거나 뜻이 왜곡되는 경우, 심지어 의미파악이 쉽지 않은 영어표기가 적지않다.
조달청의 슬로건이 그렇다. 충북지방조달청의 현관에는 ‘혁신조달’이란 표현이 보란 듯 게시돼 있다.
도대체 혁신조달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일반 시민들로서 쉽게 공감되지 않는 표현이다.
영동군의 캐치프레이즈는 ‘레인보우 영동’이다. 영동읍내 교량과 조형물은 상당수 무지개색으로 장식돼 있다.
무지개와 영동이 무슨 관계일까. 그 배경을 살펴보니 영동의 포도와 과일, 와인 등 특산물을 7가지 색깔에 담았다는 것이다. 역시 공부를 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내용이다. 미국에서 레이보우는‘성(性)의 다양성’으로 통한다는 대목에서는 고개마저 갸우뚱해진다.
언제부터인가 전국의 고속도로에는 졸음운전의 위험을 계몽하려는 캠페인이 즐비하게 내걸리기 시작했다.
“졸음운전, 자식은 고아된다”“깜박졸음! 번쩍 저승”“겨우 졸음에 목숨 거시겠습니까?”
한결같이 표현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오죽하면 저런 캠페인을 내걸었을까 이해를 해보지만 기분이 영 편치 않은 게 사실이다. 지나친 희화화로 운전자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문구도 적지않다.
“뭣이 중헌디! 졸리면 쉬랑께”“졸면 뭐하노! 사고 날낀데…”
한국도로공사는 국민들의 수준을 요정도로 보고 있는 것인가?
국민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한 게 아닌가라는 불쾌감이 드는 게 나만의 생각일까.
더불어민주당 정정순 의원(청주 상당)이 최근 국회에서 고속도로의 졸음운전 캠페인을 문제 삼았다.
문구가 지나치게 자극적인데다 국격에 맞지도 않고 오히려 운전자의 시선과 생각을 방해해 사고위험을 높인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공감가는 지적이다. 한국도로공사는 과연 어떤 대안을 내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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