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나간 인간들의 대화
정신 나간 인간들의 대화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0.09.1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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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나는 있는 걸까?

제정신인 사람:그걸 왜 물어? 미친놈.

정신 나간 사람 1:자신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 증명해봐.

정신 나간 사람 2:증명할 수 있지. 나는 신 때문에 존재한다. 신은 선하다. 선한 존재는 다른 것들이 존재하는 걸 시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이 있는 한 다른 존재로서의 나는 있을 수밖에 없다.

1. 신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

2. 나 ← 나의 부모 ← 부모의 부모 ← …계속해서 가다가 보면 처음이 있어야 한다. 처음이 없다면 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처음은 육신의 부모일 수 없다. 육신의 부모는 또 다른 육신의 부모가 있어야 태어나기 때문이다. 나를 가능하게 하는, 육신의 부모가 아닌 세상의 첫 번째 존재가 있어야 하고 그것이 신이다.

1. 내가 있어야 신이 있다는 증명이네. 처음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내가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거든.

2. 너는 내가 있으니까 나하고 대화하는 거잖아? 그러니 너도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1. 너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 나는 나 밖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없어. 어젯밤 꿈에 애인이 나타나서 서로 너무 좋아서 죽을 뻔했지. 애인하고의 만남이 너무 생생해서 짜릿하고 즐겁고 행복해서 어쩔 줄 몰라 했지. 그런데 잠에서 깨어보니 꿈이었던 거야. 내 앞에 다른 사람(너)이 있다는 것이 너무 확실하고 분명해 보이지만 그게 꿈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잖아. 너무 생생하고 명확하지만 지금 이게 꿈이 아니란 걸 보장할 수는 없거든.

2. 나는 네 눈앞에 있고, 너는 내 눈앞에 있잖아. 나도 너를 보지만 너도 나를 보잖아, 보이잖아?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는 말도 몰라?

1. 보이니까 있는 거라구? 그럼 눈을 감아봐. 내가 보여? 안 보이지? 내가 있어? 없어? 있다고 하면 눈에 보이는 것이 나나 네가 존재한다는 걸 보장해주지 못하는 거지. 없다고 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존재를 보장한다는 말을 지킬 수는 있지만 나나 네가 눈 감으면 없어진다고? 소가 웃겠다.

2. 내가 눈을 감아도 앞의 대상은 있지. 나는 보지 않지만 누군가, 특히 신이 그걸 보고 있기 때문에 있는 거야.

1. 또 신이야? 신을 안 믿으면 나의 존재도 보장할 수 없다는 거네. 신을 믿는 사람은 내가 있고, 무신론자는 내가 없는 거네? 황당한 이야기네.

2. 네 앞에 있는 돌부리를 걷어차 봐. 아프지? 그래도 없다고 할 수 있어? 뜨거운 맛을 봐야 인생이 리얼하다는 걸 알 수 있다니까.

1. 그건 네가 앞에서 한 말과 같은 거야. 보이니까 있는 거라고 하는 말과 돌부리를 걷어차서 아파 보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는 이야기는 같은 논리라는 거지. 결국 눈 감으면 나(너)의 존재를 입증할 방법이 없는 것처럼 차보지 않으면 있다는 걸 알 수 없다는 거지.

2. 그럼 너는 세상에 있는 것이 없다는 거야?

1. 너나 내가 존재한다는 걸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거지. 나나 네가 존재한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지.

2. 그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뭐야?

1.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문제야.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거라니까? 있다고 해도 문제고 있지 않다고 해도 문제거든.

제정신. 그런 문제를 던져놓고 나중에는 있다고 하지도 말고 없다고 하지도 마라? 그럼 애초에 던질 필요도 없는 문제네.

3. 내가 존재하는지 않는지 따져봐야 헛일이지. 내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려면 `나', `너'가 성립해야 된다. 그런데 내가 성립할까?

1·2. 성립한다는 게 무슨 말이야?

3. 성립하지 않는다는 건 내가 허구적이라는 말이다.

1·2. 허구라구? 그게 무슨 말이야?

정신 나간 나도 아직은 모르겠다. 이 의문에 말로 답하는 건 불가능하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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