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매쟁이라도 좋다
중매쟁이라도 좋다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0.09.15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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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남편은 전화를 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둘러 `발정'이 났다는 그 집으로 갔다. 남편이 나가고 난 뒤의 상담 전화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결혼 전부터 남편의 일이 그런 일인 줄 몰랐던 것도 아니고, 새삼 전화를 받지 않을 수도 없었다. 전화를 거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시골의 노인들이다. 신 새벽, 시골의 노인들은 해가 미처 지상에 도착하기도 전에 서둘러 하루를 시작한다. 어찌 보면 하루의 문을 여는 것은 하늘에 떠 있는 해가 아니라 땅 위의 부지런한 농부들의 발걸음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스물셋, 서툴지만 나는 중매쟁이가 되어야 했다. 인공수정사인 남편과 발정이 난 암소들을 이어주는 중매쟁이. 노인들은 처음에는 내 전화 목소리가 어리다 생각했는지 엄마를 바꿔달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부인이라고 하면 그때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들의 자식 같은 암소의 증상을 세세히 이야기한다.

`뒤가 벌겋게 부었다는 둥, 피가 나온다는 둥, 구영을 밟고 올라 소리를 지른다는 둥, 다른 소의 등을 자꾸 올라탄다는 둥, 눈이 부리부리해졌다는 둥, 노란 물이 나온다는 둥…'. 증상도 구구절절했다.

누가 지켜보는 것도 아닌데도 나는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곤 했다. 이쪽 사정을 알 리 없는 전화 저편의 노인들은 자신들의 말이 끝나면 상담에 대한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나는 해줄 말이 없었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말을 더듬으며 곧바로 전화를 드린다고 하곤 끊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있던 때도 아니라 남편을 삐삐로 호출해 해결하도록 했다.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아니 세월이 만들어 낸 경험이라고 해야 할까. 어벙하던 나도 그렇게 몇 해가 지나니 유능한 상담자이자, 중매쟁이가 되어 있었다. 상대편에서 물어보기도 전에 나는 `발정'의 증상을 알려 주고 중매가 성사될지 아닐지를 판결해 준다. 그 시절 남편은 이 고장에서는 알아주는 `소 신랑'이었다. 소 인공수정은 아침저녁으로 이뤄지는데 하루에도 많을 때는 사십 여건이나 되었다. 시골의 마을 입구에 남편의 차가 들어서면 아이들은 “소 신랑이다!”라고 외치며 따라다니곤 했다. 남편은 자신의 그 화려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그리워한다. 하루에도 사십여 명의 여자에게 임신시켰으니 이만하면 바람둥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예전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소가 없는 집이 거의 없었다. 소는 집안의 재산이고, 일꾼이며 가족이었다. 남편은 여전히 그 화려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다. 대부분의 농장에서는 소들의 인공수정도 농장주가 배워 수정을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지금은 드문드문 오는 수정 문의 전화도 남편이 알아서 하고 있고, 예전처럼 새벽 댓바람부터 야시시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노인도 없건만 나도 남편처럼 과거가 그리운 건 왜인지 모르겠다.

그것은 아마도 남편의 등이 펴지고 어깨가 올라가는 것은 `소여인'들을 만나러 가는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삼십여 년 동안 자신의 허리를 휘게 하고 몸 깊숙이 골병이 들게 했음에도 남편은 여전히 슴벅이는 큰 눈을 가진 여인들의 남자임을 자부한다. 그러니 어쩌랴. 내가 아무리 미워해도 남편의 바람기는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아는데, 나도 그 여인들을 좋아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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