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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5.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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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그 빛의 다양한 스펙트럼
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영화는 인간의 시각이 지닌 잔상능력을 근거로, 움직이는 영상의 환각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명제는 불변의 과학적 진실이다.

그러나 이런 본질적인 가치로 전도연의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의 기쁨을 함께 나누기에는 너무 재미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그 영화 '밀양(密陽 Secret Sunshine)'이 내뿜는 빛이 '영상의 환각'이라는 본질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빛의 예술이다. 망막에 전달된 빛이 잔상효과를 거치면서 영상의 연속성을 유지하게 하는 일종의 현혹이 영화가 갖는 과학성인 셈이다.

영화 '밀양'에서는 그런 빛이 처연하다.

어릴 적 양지바른 골목 어귀에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느꼈던 따사로운 햇볕의 기억이 이 영화에서는 극단의 처절함으로 묘사된다.

이청준의 소설 '벌레이야기'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밀양'은 용서를 화두로 내세우면서 신과 인간사이의 갈등과 인간 내면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를 가늠하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밝음과 따뜻함으로 상징되는 '빛'이, 이 영화에 이르러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인간의 아픔을 묘사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눈은 빛을 통하지 않고는 색을 볼 수 없다. 색에는 고유의 색상과 색의 느낌을 나타내는 명도와 채도의 의미가 모두 담겨 있다.

이창동 감독은 의미부여의 중요한 매개로 '빛'을 이미 예감한 바 있다. 1992년에 개봉된 영화 '오아시스'에서는 빛과 거울을 이용해 소통을 추구한다. 그곳에서의 빛은 평화를 상징하는 새가 되고 나비가 되면서 환상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장치가 된다.

칸 영화제 수상으로 입증됐듯이 영화'밀양'에서 보여준 전도연의 연기는 섬뜩하기조차 싶을 정도로 탁월하다.

그러나 그녀의 연기를 극대화시키는 섬세한 연출력이 오히려 압권이다.

영화 초입에 핸드헬드(들고찍기)방식의 촬영기법을 적용해 불안감을 조성하는 이 영화는 불자동차 혹은 고장 난 자판기, 전등 스위치를 갖고 장난을 치는 환자 등을 교묘하게 배경으로 배치하면서 극적 상승효과를 노리고 있다.

"내가 용서하기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용서할 수 있는가"라는 주인공 신애의 극단적 절망감에서 쏟아지는 처연한 한줄기 햇살.

마른 강아지풀이 가련하게 떨고 있는 시궁창을 비추는 빛은 더 이상 찬란함도 따스함도 아닌,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의 변주곡일 뿐이다. 스위스의 무대장치가 겸 연극이론가 아돌프 아피아(Adolphe Appia)는 죽은 무대와 살아있는 배우와의 모순점을 해결하는데는 빛이 최선이라고 했다.

그런 빛의 예술적 가치가 칸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이라는 영광을 있게 한 매신저로서의 역할을 했고, 그 속에는 인간의 본질이라는 처연한 원형이 있다.

이쯤에서 한국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백번째 영화 '천년학'의 비장함이 대비된다. 강수연의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을 가능하게 했던 임권택 감독은 명실상부한 한국의 대표적 감독이다. 그러나 영화 '천년학'은 민족적 한(恨)의 정서를 물씬 담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아쉬움 속에 극장에서 내려졌다.

'한(恨)'=우울함이라는 고정적 등식과 암울한 영화의 빛,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20세기적 발상으로는 이미 관객을 감동시키기 어렵다.

텅 빈 들판에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의 처연함은 주척거리는 빗줄기보다도 더욱 결연한 슬픔과 맞닿는다.

빛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졌다. 한국 영화의 힘은 세계와의 소통이 가능한 그런 다양성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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