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만 먹고 가지요
밥만 먹고 가지요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20.09.14 2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정명숙 수필가

 

미국에 정착해 살던 지인의 친척들이 고향을 찾아왔었다. 60년대에 지인의 어머니만 한국에 남겨두고 형제·자매가 하와이와 미국 본토로 이민 가서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분들이었다. 몇 년에 한 번씩 대식구가 한국으로 이동하는 것은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지인 내외는 그분들이 오실 때마다 물질적으로나 시간상으로 많은 소비를 감당하며 성심껏 대접을 해드렸다. 그러던 중에 친지 한 분의 자제가 한국에서 결혼식을 치르게 되었다. 친척들은 미리 입국해 결혼식준비를 하고 새 며느리를 맞아들이는 축제의 장을 벌였는데 잔치가 끝난 후 하나같이 기분이 좋아 보이질 않았다.

예전에는 교통과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대인관계도 지금처럼 폭이 넓지 않았다. 혼사라야 가까운 친지나 근동사람뿐이었다. 미리 술을 담그고 며칠 전부터 음식 장만에 온 동네가 술렁일 즈음, 미리 오신 집안어른들은 잔칫날을 지나고도 며칠 동안 숙식을 함께하곤 했었다. 그런 시절에 이민을 가서 미국에 정착했으니 변해버린 한국의 결혼식 풍경이 참으로 기가 막혔을 것이다.

한국에 사는 사돈 쪽으로 많은 손님이 왔단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혼주와 눈 맞추고 악수를 하더니 무엇이 그리 급한지 축의금을 내자마자 곧바로 피로연장을 향해 돌아서더란다. 식사를 먼저 하고 식장 안으로 되돌아오겠거니 했는데 그냥 나가는 모습을 보며 황당했다고 한다. 혼례를 치르는 신랑 신부의 얼굴은 본체만체 식장 안으로는 발도 들여놓질 않더라고 하며 밥만 먹고 가는 게 축하는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바쁜 세상이니 어쩔 수 없다고 지인 내외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며 몹시 실망하는 것을 보았었다.

친구가 딸을 시집보내던 날이었다. 먼 곳이거나 가까이서 온 친구들이 예식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혼주만 보고 피로연장으로 모였다. 예식은 뒷전이고 식사에 열중하다 늦게 오는 친구들을 반긴다. 나는 좀 더 가깝게 지내는 친구를 설득해 예식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다 뒤늦게 합류를 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왠지 마음이 개운치가 않았다. 시집보내는 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랑도 하고 싶고 새로운 둥지를 만들려 떠나보내는 혼주의 쓸쓸한 마음을 헤아려 혼례식을 지켜봐 주고 축복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식장 안은 빈 좌석이 눈에 띄는데 앉을 자리 없이 북적거리는 피로연장에 와야 잔칫집이란 걸 실감한다. 헌데 이젠 그마저도 아득한 일이 되어 버렸다.

며칠 전 조카딸이 결혼했다. 오십 명 이하만 참석해야 한다는 방침이 내려진 탓도 있었지만, 예식장 안은 썰렁했다. 들뜬 잔칫집 분위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역병이 두려운 하객들은 마스크를 쓰고도 말을 아낀다. 축하의 말만 허공에 던지고 풍성한 뷔페 대신 주문한 도시락도 마다하고 발길을 돌린다. 눈치를 봐야 하는 혼주도 민망하고 축복받아야 할 신랑 신부도 편치 않은 눈치다. 마주앉아 잔치 음식을 먹으며 왁자하던 시절은 오지 않을 것인가. 밥만 먹고 간다고 서운해 하던 그때마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