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 또는 저주
도끼 또는 저주
  • 공진희 기자
  • 승인 2020.09.13 1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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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공진희 진천 주재(부장)
공진희 진천 주재(부장)

 

`쾅'하는 굉음과 함께 유리창이 심하게 흔들렸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보니 담이 무너져 있었다.

본래 하나였지만 나와 너를 구별 짓고 서로 권리의 영역을 경계 짓던 기다란 담벼락이 칼에 잘려 도마 위에 수평으로 누워 버린 두부 신세가 되어 있었다.

앞집 마당에 통째로 널브러진 담벼락을 둘러보는데 마당 한구석에서 책더미와 낡은 가재 소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책더미를 들추자 주로 소설로 편집된 두툼한 월간지 1년치가 노끈에 묶인 채 내 손길을 반겼다.

22세 천재 작가의 탄생. 관념을 소설화하는 독특한 작품세계. 나도 이렇게는 쓰지 못한다는 어느 심사위원의 심사평. 작가와 작품에 쏟아진 찬사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작가 이승우는 1981년 소설 `에리직톤의 초상'으로 한국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피격사건과 에리직톤 신화를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은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과 반항, 지적 허영심에 목말라 하던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에리직톤은 그리스 신화에서 매우 오만하고 불경스러운 인물이다.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의 신성한 정원에는 숲의 요정들이 둘러싸며 놀던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에리직톤은 요정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그 나무를 도끼로 쓰러뜨렸다. 분노한 데메테르는 리모스를 보내 그에게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저주를 내렸다.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음식을 먹어치웠지만 배고픔을 면할 수 없었다. 부자였던 그는 음식을 구할 돈이 더 이상 없게 되자 자신의 딸까지 팔았다. 아버지에 의해 팔려진 그녀는 예전에 자신의 순결을 앗아갔던 포세이돈에게 도움을 청했다. 포세이돈은 그녀에게 원하는 대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변신의 능력을 주었다. 그녀는 모습을 바꾸어 그녀의 주인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그녀의 능력을 알게 된 에리직톤은 되돌아오는 딸을 다시 팔아가며 허기를 채워나갔다. 그러나 그의 끝없는 배고픔은 자신의 몸을 모두 뜯어먹을 때까지 계속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소설에 등장하는 네 명의 주요 인물은 이 에리직톤을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에 따라 신과 사회 사이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적절한 거리를 찾아간다.

국제보건기구가 지난 3월 팬데믹을 선언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국가방역이 국가의 주요 안보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가 대유행하면서 경제가 휘청거리고 경제가 흔들리자 우리의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는 의료진의 사투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 국민들의 눈물겨운 인내로 코로나 확산세를 잡아내며 일상으로의 복귀를 눈앞에 두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광화문 집회를 계기로 코로나가 재확산하면서 우리가 꿈꾸던 일상으로의 복귀라는 꿈이 멀어지고 있다. 자영업이, 경제가, 일상이 점점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그런데 지난 8월 광화문 집회에는 태극기, 성조기와 함께 이스라엘 국기까지 등장했다. 그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인지, 아니면 이 땅에 사는 미국인인지 유대인인지 그 정체성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부 대형교회 성직자들이 사회적 지위와 사적 이익이라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정치와 결탁해 신도들을 전염병의 온상으로 동원하고, 비상식적인 주장에 굶주려 이웃의 생명과 안전도 무시한 채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며 광장으로 향하는 군상들을 지켜보자니 신의 저주를 받아 자신의 딸까지 팔아 가며 허기를 채우는 에리직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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