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 조선왕실의 편지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 조선왕실의 편지
  •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 승인 2020.09.0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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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잘 지내시죠, 건강은 괜찮으세요?” 요즘같이 이 흔한 인사말에 진심을 담은 적이 있었을까? 코로나 19의 여파로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을 보기도 힘든 시절이자, 그래서 더 지인들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시절이다. 그나마 요즘은 스마트폰이나 화상통화 같은 첨단문명이 있어 언텍트로도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지만, 이런 기술이 보급되기 전 우리 신조들은 어떻게 서로의 안부를 물었을까?

누구나 예상한 답변이겠지만, 통신이 발달하기 전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은 편지였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한글편지를 통해 가족과 친지 등 가까운 사이에서 사적인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다. 이렇게 한글로 쓴 편지를 “언간”이라고 하며 남성 지식층 위주의 한문 편지와 달리 신분, 성별, 나이를 가리지 않고 대중적인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왕실에서도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글편지가 자주 오갔다. 출가하여 궁을 나온 공주는 한글편지로 왕실 어른들의 안부를 물었고, 편지를 받은 왕과 왕비는 다시 한글편지로 답신을 보내며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았다. 그 당시 오간 편지를 서책으로 묶은 것들이 지금까지 몇 권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예가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보물 1947호 『숙명신한첩』이다.

숙명신한첩의 주인공은 효종의 셋째 딸 숙명공주로, 13살 때 이조참판 심지원의 아들 심익현과 혼인하였다. 비록 조혼의 풍습이 성행했던 시절이지만, 13살의 어린 딸을 시집보낸 부모의 마음이 어찌 그저 편안했을까? 숙명신한첩에는 딸의 안부를 걱정하며 전하는 아버지 효종, 어머니 인선왕후, 할머니 장렬왕후, 그리고 동생인 현종의 편지까지 모두 65통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어머니인 인선왕후의 편지가 54통으로 가장 많다. 그녀의 편지에는 딸의 출산과 육아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 투정부리는 외손자의 모습조차 귀여운 할머니의 마음, 지아비인 효종이 승하한 후 슬퍼하며 쓸쓸해하는 아내의 마음이 다채롭게 담겨 있다. 또한 당시 왕실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소설책에 대한 내용도 있어, 당시 왕실 여성들의 오락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딸에 대한 마음이 구구절절 써내려간 인선왕후의 편지와 달리 아버지 효종의 편지는 간략하지만 그 역시 딸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뿍 담고 있다. 숙명공주의 아이가 잘못되고 난 후에 효종은 이렇게 편지에 적었다.

“그 아이가 그리될 줄 어찌 알았겠느냐... 부모를 생각해 너무 슬퍼하며 스스로를 해치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아프지 말거라”

한편 또 다른 편지에서는 부부싸움을 한 딸 내외에게 “이 경솔한 녀석아”하며 나무라기도 하고, 사위를 칭찬하며 귀한 종이를 선물하는 등 다정하며 친숙한 아버지의 모습이 비춰진다.

이처럼 『숙명신한첩』에는 400년 전 왕실 가족들의 소소한 일상과 마음이 생생히 담겨 있다. 편지글을 읽다 보면 지고지상의 왕실 사람들도 요즘 부모님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왠지 친숙하게 느껴진다. 날도 선선해지는 9월의 가을날, 400년 전 그들처럼 우리도 정말 오래간만에 부모님께 손 편지 한번 적어 보내는 것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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