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롱고 “도시인 men in the cities”
로버트 롱고 “도시인 men in the cities”
  • 이상애 미술평론가·미술학박사
  • 승인 2020.09.0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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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팝아트 이래 예술과 일상과의 경계를 허물며 대중매체가 주요 예술 작품의 표현 방법으로 등장한 이래 오늘날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직·간접적으로 대중매체의 영향하에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대중매체가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음을 의미하며, 신문, 잡지, TV, 영화 그리고 각종 음악 등과 같은 미디어는 장르를 불문하고 더 이상 예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것이다.

미디어에 영향을 받아 작업을 하는 팝아티스들이 그러하듯이 뉴욕출신 미술가 로버트 롱고 또한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대중매체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관객과의 소통을 하고자 한 작가이다. 그는 특히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1979년부터 영화 스틸사진이나, 패션잡지의 사진 등을 차용하여 익명의 인물들을 특별한 존재로 바꾸어 놓는 `도시인시리즈'를 제작한다. 롱고의 `도시인시리즈'는 당시 후기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경쟁구도 속에서 도시인들의 지친 모습을 동 시점에서 포착하여 드로잉한 작품이다. 드로잉 속 인물들은 무언가에 지쳐 몸부림치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무아지경에 빠져 격렬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죽어가며 몸을 뒤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인물들은 남성은 수트와 넥타이를 매고 있고 여성은 드레스와 스커트를 입고 있다.

롱고의 말에 의하면 그것들은 유니폼이다. 그러나 그들이 통일되게 입고 있는 의상은 권위와, 규제와, 일체감을 형성하는 것으로서의 유니폼이 아닌 도시의 샐러리맨들이 통일되게 입고 있는 소외된 개인주의를 정립시키는 요소로서의 유니폼이다. 따라서 이들은 어떤 개인이라기보다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도시인의 전형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인물들이다. 이 인물들에 대해 롱고는 “불온한 영혼들”, “타락한 천사들”이라고 말한다. 시대의 전형으로서의 이 도시인들은 격렬한 얼굴 표정과 거친 몸동작으로 슬픔, 고통, 고뇌 등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뒤틀린 몸동작과 발작을 일으키는 듯한 제스처는 롱고가 포스트모던 펑크뮤직과 뉴웨이브의 영향을 받아 제작한 것으로서, 보이지 않는 힘과, 권력에 대한 저항의 제스처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애 미술평론가·미술학박사
이상애 미술평론가·미술학박사

 

현대사회 속의 미술가는 특정한 역할이 부여되지 않게 됨에 따라 그 임무가 보다 광범위하고 심오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롱고의 말대로 미술가의 임무는 현시대를 포착하여 시대정신을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롱고의 `도시인시리즈'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하는 시간에 뛰어들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되는 산업적 혁신과 정치적 불안정, 가속화되는 도시화, 범람하는 대중매체와 그 생산물 속에서 롱고는 미술가로서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여 동시대의 문화를 반영함으로써 문화의 수호자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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