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천냥이면 눈이 구백냥이어라
몸이 천냥이면 눈이 구백냥이어라
  • 임현택 괴산문인협회지부장
  • 승인 2020.09.09 1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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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괴산문인협회지부장
임현택 괴산문인협회지부장

 

`일치하지 않은 번호입니다.'` 오류입니다.'연신 발생한 오류로 계좌이체를 할 수 없어 창구에 문의해야 한단다. 숫자 3을 8로 연속적으로 입력했으니 오류를 범한 것이다. 안경을 썼는데도 숫자를 제대로 볼 수 없다. 도수를 올려야 하나, 노안으로 안경을 쓰고도 커다란 손 돋보기를 들고 봐야 되나,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앉듯 먹먹해진다.

얼마 전에도 일이 있었다. 수목원에서 희귀한 꽃 사진을 촬영했는데 몇 번을 다시 촬영해도 약간씩 흔들려 선명하게 촬영되지 않았다. 삭제를 하고 촬영하기를 반복하면서 휴대폰만 탓하다 결국 삭제를 포기하고 사진을 저장했다.

집에 돌아와 안경을 쓰고 사진첩을 정리해 보니 프레임 속 모두가 완벽한 사진이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책상 앞에서만 안경을 착용하고 외부에서는 착용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시력저하 탓에 가까이 본 핸드폰 사진첩이 모두 흐릿하게 초점을 잃은 사진으로 보였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평생 늙지 않는 눈을 기대하는 건 아니다. 눈과 멀어져야 글씨가 잘 보이는 나이가 되었다지만 이리도 빨리 시력이 나빠질 줄이야. 눈이 보배라 했는데 심란하다.

휴대폰 문자라도 볼 때면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입은 삼각형 모양으로 일그러진다.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든 손은 자꾸만 멀어진다. 때때로 안경 너머로 보면 더 잘 보일 때도 있다. 답신이라도 하려면 오타로 인해 지우고 쓰기를 몇 번씩 해야 제대로 전송된다.

노안은 불청객이다. 어쩔 수 없이 불청객과 동고동락을 하면서 안경은 벗이 되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흐릿한 세상을 환하게 밝혀줄 마법의 안경은 삶을 향상해 줄 보물 같은 동반자가 되었다. 디지털시대인 만큼 휴대폰과 컴퓨터로 업무를 보는 일상, 늘 곁에 있는 검은 테의 돋보기안경은 퇴화하고 있는 노안의 빛이다.

그럼에도, 익숙지 않은 안경은 어지럽고 귀찮은 존재로 벗어놓고 다니기가 일쑤다. 잘 보이지 않은 불편보다 안경 착용이 더 불편하다 보니 사무실은 물론, 안방과 가방 속에도 심지어 식탁에까지 손길 닿는 곳곳에 안경이 있다.

그렇게 불편한 안경도 패션 트렌드다. 시력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착용하는 안경이 아니다. 어떤 이는 패션의 완성으로 알 없는 안경테만 쓰는데, 안경 하나로 참으로 다양하게 이미지 변신한다. 밋밋한 얼굴에 안경 하나로 도도한 커리우먼으로 변모하고, 날카로운 눈매는 안경으로 결점을 가려주는 용구로써 변신하니 그 또한 빛과 그림자처럼 안경은 늘 곁에 있다.

그렇게 삶의 질을 향상해주는 안경이 조선시대는 의미가 달랐다. 시대적으로 귀한 안경이 집 한 채 값에 달할 정도였기에 신분과 권세를 나타내는 용구였다. 눈이 나빠져 안경을 구입 해도 쉽게 쓸 수가 없었다. 안경의 의미와는 달리 편견이 얼마나 심했던지 안경을 쓰면 자신보다 더 높다고 생각했기에 윗사람 앞에서 안경을 쓰는 것은 예의 없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아 신중하게 때와 장소를 가려 썼다.

조선시대 정조 왕도 안경을 쓴 왕이었지만 안경예법이 엄격한 시대인 만큼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예의를 갖추기 위해 안경을 벗었다 하니 안경 예법이 얼마나 엄격했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그 시대 여인들은 시력이 나빠지면 안경을 제대로 쓰기나 했을까. 자료에 의하면 조선 후기에 여성도 안경을 썼다고 기록이 돼 있지만 혹여나 여자여서 숨어서 착용하진 않았을까.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 했거늘 소중한 내 눈, 흐릿한 눈앞이 선명해지고 환해졌다. 또 다른 세상이다. 치유될 순 없겠지만 눈 영양제도 샀으니 조금은 건강한 눈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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