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선생님의 마지막 수업
교장선생님의 마지막 수업
  • 추주연 청주교육지원청
  • 승인 2020.09.0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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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청주교육지원청
추주연 청주교육지원청

 

“치이 치이 치르르르” 매미소리가 요란하다. 연일 최장 기록을 깨는 장마가 입추 지나고도 이어지더니, 오늘 아침 햇살에서는 “쨍” 소리가 날 것만 같다. 빼꼼 고개를 내민 늦여름 기운에 매미는 구애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차창에 부딪히는 바람이 오랜만에 보송하다. 창문 너머 밤새 또 한 뼘 키가 자란 나무들에 감탄하며 오늘 특별한 수업이 이루어지는 학교로 달려갔다. 진천 서전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의 마지막 철학 수업이다. 수업 시간을 맞추려 회의가 끝나자 부리나케 출발해 1시간 가까이 달려갔다. 서두른 보람도 없이 보고 싶었던 수업은 끝나버린 뒤였지만 교장실에서 아이들의 편지를 읽는 교장선생님의 모습에 마음이 뭉근해진다.   
학교 안 가장 외로운 곳이 교장실, 가장 외로운 사람은 교장선생님이라는데 서전고는 다르다. 코로나19로 갑작스럽게 시작한 원격수업을 준비하느라 선생님들이 혼란을 겪을 때 교장선생님은 같은 고민을 함께 했다. 젊은 선생님들을 찾아가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수업하는 방법을 배우고 선생님들과 스스럼없이 수업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가슴 설렜단다. 대면수업보다 원격수업 준비가 훨씬 힘들었다며 아이들이 이해했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워 더 철저히 준비했다고 하신다.
교장선생님이 노심초사 준비한 수업은 아이들의 소감으로 열매를 맺는다.
“나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철학하는 삶이 비로소 인간 스스로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철학을 공부하며 갇혀 있던 시야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건축에 관심이 있는데 철학을 공부하며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중심으로 생각이 변했어요.”
교장선생님과 아이들의 한 학기 철학 수업 내용을 모아서 엮은 책인 「진리를 찾는 사색의 교실」을 선물 받았다. ‘고등학생이 만든 철학 입문서’라는 부제가 근사하다. 책 속에 담겨있는 아이들의 고민과 질문에 또 한 번 감탄한다.
교장선생님께 마지막 수업을 축하하는 인사를 건네자 “교사가 수업하는 건 당연한 거지. 난 별로 한 게 없고 아이들이 다 했어요.” 무심한 미소가 돌아온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매미 소리가 유난히 크다. 대부분의 시간을 땅속에서 애벌레로 지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주어진 짧은 생을 아쉬워하듯 줄기차게 울어댄다.
언젠가 남송시대 주희가 여조겸에게 보낸 짧은 편지를 인상 깊게 읽은 기억이 있다. “며칠 사이 매미 소리가 더욱 맑습니다. 들을 때마다 그대의 높은 기상을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매미의 울음 속에 간절함과 무심함이 함께 만들어내는 맑음이 아닐까. 평생을 스승으로 살아가는 이의 마지막 수업에 깃들어 있는 간절함과 무심함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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