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통문의 날을 기념하며
여권통문의 날을 기념하며
  • 오정란 충북여성연대 공동대표
  • 승인 2020.09.0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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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오정란 충북여성연대 공동대표
오정란 충북여성연대 공동대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오래도록 하나의 성만 존재해 왔다.

그 하나의 성은 `남성'이었다. 남성의 성은 보편이자 객관이었기에 굳이 남성이라 명명하지도 않았다. `양성평등'은 어쩌면 여성의 성을 남성과 동등한 자리로 올리려는 수많은 여성 운동의 산물이며 다른 이름일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사소한 일로 치부하며, 여성들에게만 인내하며 살라 하였다. 남성들의 목소리를 우선시하며, 여성의 목소리는 담을 넘어서는 안 되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여성의 존재 자체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자리했다. 집안에서 분란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가부장제의 가르침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음소거하고 가정에 가두며 그림자처럼 살라 했다.

그러나 고맙고 반갑게도, 백 년 전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선언이 있었다.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에서다. 당시의 신여성인 이소사, 김소사(소사는 결혼한 여성을 말함)의 이름으로 `여학교 설시 동문(女學校 設始 通文)'을 당시에 신문에 발표했다. 개화기 조선 여성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여성들의 인권선언이었다.

여권통문(女權通文)에서는 여성의 근대적 권리를 주장하였다. 첫째는 문명개화 정치에 참여할 권리, 둘째는 여성들도 남성들과 평등하게 직업을 가질 권리, 셋째는 여성도 교육을 받을 권리였다.

지금 읽어보아도 당시의 주장은 상당히 급진적이다. 현재의 여성 이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선언이다. 여성의 정치 세력화, 직업 선택에서 배제되거나, 직장 내 성차별은 여전한 현재의 이슈이다. 또한 우리가 매년 기념했던 3.8 세계 여성의 날의 기원이 된 1908년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의 외침보다도 10년이 앞선 여성 인권 선언임이 놀라웠다.

여권 통문 선언은 2020년 올해 비로소 대접을 받게 되었다. 지난 2019년 이월 31일 `양성평등기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통과되며 매년 9월1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팬데믹(pandemic)인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든 오프라인 행사가 취소되거나 축소되면서 여권통문의 날의 의미와 가치가 제대로 기념되지 못했다. 아쉬움이 남기에 내년을 기약해 본다.

백 년 전 여성들의 선언에서도 보았듯이 여성에 대한 차별은 시대적으로, 정치 사회적으로 지속하여왔음을 알 수 있으며, 용기 있는 여성의 담대한 목소리로 차별받지 않을 세상에 대한 희망의 노래도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 인종, 민족, 연령, 종교로부터 차별받지 않을 세상. 각자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사회,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의 정치적 목소리로 폄하하지 않으며, 인간으로서 누릴 행복권의 추구는 여전히 유효하다.

100년 전 언니들의 선언에서 그러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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