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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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인섭 기자
  • 승인 2007.05.30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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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수사와 경찰의 위기
한 인 섭 <사회문화부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 폭행 사건 수사로 재벌 총수까지 구속했다며 으쓱해하던 경찰이 불과 한달여만에 '봐주기·늑장수사'라는 치부가 드러나 수뇌부에 대한 질타가 연일 들끓고 있다. 게다가 이택순 경찰청장이 고교 동창이자 한화그룹 고문 유시황씨와 통화한 사실까지 드러나 이번 파문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듯하다.

이 청장은 지난 28일 사태 수습을 위해 열린 지휘부 회의에서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로 퇴진 요구를 일축했다. 그는 또 한화와 수사라인의 유착관계, 금품수수 여부 등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맑끔히 해소하려면 검찰 수사 의뢰가 불가피했다는 입장과 함께 신뢰 회복·조직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따가운 여론과 내부 원성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러나 하루만인 29일 유씨가 이 청장과 전화 통화한 사실을 털어놔 '어떠한 접촉도 없었다'는 감찰 조사는 '거짓'이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그것도 김승연 회장이 남대문 경찰서에 소환됐던 지난달 29일 이뤄져 사건과 상관없었다는 당사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청장은 이날 "면박을 주고 끊었다"며 강변했지만 "과연 그랬을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통화내용'이 어떻게 둔갑할지 관심이 더 쏠리는 듯 하다. 이 청장 지난 4일 열린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출석해 "전화 통화나 접촉한 사실이 없다"고 공언한바 있어 '국회 거증언 파문'으로까지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재벌 회장이 아들의 복수를 위해 경호원과 폭력배를 동원해 술집 종업원들을 무차별 폭행했다'는 뜬소문을 취재한 언론 보도(4월 24일)로 본격화된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은 발생(3월 8일) 두달여만에 가해자가 구속(5월 11일)된데 이어 수사 책임자들이 검찰 수사를 받아야하는 묘한 사건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받아들이기 곤혹스럽지만 이 사건은 경찰의 현주소를 너무나 잘 드러내고 있다.

상대가 재벌이긴 했지만 수뇌부나 수사책임자들 조차 여전히 외부 압력과 청탁에 유약하다는 사실을 새삼 국민들에게 인식시켰다는 점이다.

그런 탓인지 청와대도 외압과 사건 관련자들의 금품수수 여부에 대한 조사를 검찰이 해야한다는 입장을 제시했고, 경찰은 이를 받아 들이는 수순을 밟았다. 덕분에 수뇌부는 '부하들을 팔아 먹은 지휘관'이라거나 '경찰 불신을 자초한 행위'라는 내부의 몰매를 맞고 있다.

수뇌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일선 경찰들의 사기와 자존심은 상처가 커 보인다.

한때 경찰 총수였던 최기문 전청장이 한화측 '사건 무마 책임자'로 나서 수뇌부들을 상대로 '은밀한 진압'을 시도했던 점이나 연루된 이들이 줄줄이 옷을 벗거나,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는 사실이 일선 경찰들을 자괴감에 가두고 있는 듯 하다.

내부 통신망에 올려진 직원들의 사퇴 주장과 청장 용퇴를 공개적으로 주장한 경찰대 1기 동기회장의 주장이 언론을 통해 여과없이 전달되면서 국민들은 또 한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복 차림'이 주는 이미지와 달리 '참 드세고 복잡한 조직'이라는 이미지다.

수사 초기 '한국 경찰 사상 처음으로 재벌 총수를 구속하는 가슴벅찬 순간을 맞을 것'이라는 글이 내부 통신망에 올라 왔을 정도로 '한 건' 할 것 같았던 경찰은 치기(稚氣)에 가까운 그 표현처럼 이런저런 한계를 드러냈다. '수사권 독립' 역시 '제 입'으로 말하기가 난감해진 것 같다.

그러나 '치기' 일지라도 당당한 경찰을 보고 싶은 국민 정서와 기대는 여전하지 않을까 싶다. 경찰이 당당해야 국민이 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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