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말이 맞을까?
누구 말이 맞을까?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0.09.02 2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요새는 새벽에 일어난다. 이런저런 일을 하다 아침 먹고 세탁기에 빨래를 넣었다. 요즘은 햇빛이 좋아 한나절이면 뽀송뽀송하게 마르고 냄새도 안 난다. 세탁에 한 시간 정도 걸린다. 한잠 자고 일어나 널면 되겠다 싶었다. 일찍 일어난 터라 피곤하다. 꿀잠을 한잠 잔다. 일어나 채비를 하고 나서는데 카드 지갑이 눈에 띈다. 갖고 갈까 말까? 카드 쓸 일이 없으니 안 갖고 가도 되겠다 싶어 그냥 나선다.

집으로 가는 도중 기름을 넣었다. 기름을 넣고 차를 뺀 다음 화장실에 갔다가 막 출발하려는데 뒷 차가 경적을 울린다. 쳐다보니 운전석 뒤쪽을 보라고 손짓을 한다. 사이드미러로 보니 주유구를 잠그지 않았다. 서둘러 내려 주유구를 잠그고 출발한다.

요새 왜 이러지, 또 빼먹은 거 없나? 갑자기 빨래 생각이 난다. 한잠 자고 나서 넌다는 걸 깜빡했다. 내일 널거나 아니면 조금 일찍 가서 말리지 하고 내처 길을 간다.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학교로 간다. 카페에 들러 레모네이드 한 잔 사들고 대학 건물로 간다. 커피를 안 마시니 심심할 때 새콤한 레몬 음료 한 모금 마시면 청량감이 있어서 좋다.

건물에 들어서려니 출입 카드가 없다.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출입카드가 없으면 건물에 드나들 수가 없다. 카드 지갑에 신용카드만이 아니라 출입카드도 있다는 걸 깜빡했다. 카드 지갑을 안 갖고 왔으니 들어갈 수가 없다. 건물 안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안에서 누가 나온다. 눈치를 보며 들어선다.

연구실에 들어와 푸근한 마음으로 윗도리를 벗어 의자에 걸고 앉는다. 시원한 음료가 생각이 난다. 레모네이드 어디 갔지? 아차, 깜빡 잊고 차에 두고 내렸다. 조교에게 카드키를 빌려 차로 가서 차 문을 열려니 차 열쇠가 없다. 벗어놓은 윗도리에 차 열쇠를 둔 걸 깜빡했다. 다시 들어와 차 열쇠를 챙겨 건물을 나와서 레모네이드를 챙겨 온다.

누구의 잘못인가? 코로나의 잘못인가? 코로나가 없었다면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런가? 아닌 거 같다. 그럼 코로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네. 그럼 내가 문제네. 왜 이러지? 요즘 들어 부쩍 그렇다. 요즘 내가 뭐하고 살지? 아무 일도 안 하지. 생각을 비우는 게 생활의 주이기 때문에 일이라고 하는 걸 하지 않는다고 봐야지. 그럼 그것 때문에 그런가 보다. 생각 비우는 일의 후유증일 거라고 자위한다.

원래 생각이라는 건 스트레스이다. 스트레스인 생각을 왜 하냐고? 그건 긴장되기 때문이지. 왜 긴장되냐고? 산다는 게 긴장이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나를 쳐다본다. 나는 별생각 없이 보려고 하는데 고양이는 나를 뚫어지게 본다. 내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쳐다보고 있다. 그러다 내가 발이라도 한 번 구르면 쏜살같이 내뺀다. 고양이에겐 타자=적이 될 가능성이다. 고양이는 타자가 등장하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사람에게도 타자는 스트레스의 원천이다. 타자와의 어울림인 사회생활이 스트레스인 이유가 여기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 살다 보면 스트레스인 줄 알면서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긴장 때문에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을 놓기 위해서는 긴장을 늦춰야 한다. 긴장(tension)을 늦추는(a:서양어에서 a는 부정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건 주의를 집중(attention)하는 일이다. 집중이란 생각을 골똘히 하는 것이 아니라 긴장을 풀고 생각을 놓는 것이다. 긴장 없는 생활을 하니 사소한 생각을 놓치고 그래서 오늘처럼 깜빡깜빡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 변명이다.

집사람에게 오늘 일을 말하고 내 생각을 말했더니 돌아오는 말. 영감, 별소리를 다해도 그건 치매여. 평생 알코올성 치매 증상을 달고 살더니만 술을 안 먹어 다행인가 했는데 이제 노인성 치매에 접어들었구만. 누구 말이 맞나?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