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어느 할머니를 위한 기도
9월, 어느 할머니를 위한 기도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9.0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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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하룻밤 사이에 하늘이 더 높아질 수야 있겠습니까. 9월이 온다고 새벽별이 더 빛나고, 노을에 물든 구름은 한층 더 고운 빛깔로 단장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럼에도 올 9월 첫 새벽은 어쩐지 유난히 싱그럽고, 유달리 마음을 들뜨게 하는 신비로움이 있습니다.

아직 해 뜨지 않은 9월의 첫 새벽, 깊은 어둠이 뒤덮고 있는 우리 동네 아주 작은 교회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있는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교회에 들어가 새벽기도를 하려시나 봅니다.

새까만 어둠의 두려움을 덜어내고 기어이 교회 문을 열고 홀로 드리는 기도를 어떻게 탓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발꿈치를 잔뜩 치켜든 늙은 몸의 조바심과 떨림이 위태롭다가도 `이 꼭두새벽에 꼭 교회를 나가야 하는가'라는 반사적 푸념이 맨 먼저 내 생각을 지배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사람들 사이의 떨어짐(거리두기)과 마스크로 얼굴 가림을 보편적인 선한 의지로 실천하며 힘겹게 견디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그 악랄함이 극단으로 편향된 정치성향과 탐욕적인 집착에서 비롯된 맹신 탓이라는데 이의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광화문 집회를 거짓으로 부인하며 아흔이 넘은 시어머니와 자식에게까지 바이러스를 옮기는 위선은 절대로 인간의 도리에 해당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믿는 신의 뜻도 그러할 것입니다.

새벽길을 걸으며, 아무도 없는 컴컴한 교회 문을 들어서는 할머니를 생각합니다. 누가 볼까 두려운 마음에 잔뜩 웅크린 몸으로 새벽기도에 나서는 할머니는 어쩌면 만류할 가족들조차 없을지 모릅니다.

아니 가족들이 있다 해도 한평생 살아온 회한과 얼마 남지 않은 생에 대한 감사와 귀의의 간절함이, 힘든 새벽기도의 길로 늙은 몸을 이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할머니에겐 아무도 없는 컴컴한 교회에서 홀로 간구하는 기도가 쓸쓸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는 소망에 맞춰져 있는 건 아닌지요. 그 할머니는 어둠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떨쳐내면서 교회를 찾아 기도함으로써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과 인정머리 없는 가족이거나 이웃, 그리고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나머지 사람들의 응답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요.

궁극적으로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다다를 수 있는 위험입니다.

그리고 그 할머니에게는 마지막 작별 인사도 넉넉하게 나눌 수 없을 만큼 차단과 격리의 쓸쓸한 죽음이 예고될 수 있다는 것 또한 두려움일 수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지금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아무도 고독한 죽음의 길을 차단할 방법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다시는 예전의 일상으로 완벽하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영영 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소망은,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생각은 이 고통이 도대체 언제 끝날 것인가에 쏠려 있으므로 시련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그 고통은 인내심만으로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지경으로 사람들을 몰아가고 있고, 쫓기는 사람들은 우울함을 넘어 분노의 감정을 점차 숨기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마음과 마음을 만나게 하는 일입니다. 홀로 교회를 찾아 새벽기도를 해야만 하는 그 할머니의 처지를 헤아려야 하고, 갈수록 살길이 막막해지고 있는 가난한 이웃들을 마음속으로 라도 위로해줄 생각과 마음을 찾는 일입니다.

산이 그냥 산이지 않고/ 바람이 그냥 바람이 아니라/ 너의 가슴에서, 나의 가슴에서/ 약속이 되고 소망이 되면/ 떡갈나무 잎으로 커다란 얼굴을 만들어/ 우리는 서로서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 가보자.(하략)

시인 오광수가 노래한 <9월의 약속>처럼 외롭고 쓸쓸하며, 가난하여 더 간절한 사람들에게 마음의 손을 내미는 우리의 9월입니다.

비록 끝은 아닐지라도, 더 높고 더 멀어질수록 푸른빛으로 짙어지는 하늘이 9월의 우리에게 활짝 열릴지니. BTS처럼. `내 안의 불꽃들로 이 밤을 찬란하게 밝히는'BTS의 <다이너마이트>처럼 터지는 9월의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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