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가 다른 맛
깊이가 다른 맛
  • 한기연 수필가
  • 승인 2020.08.3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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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가슴에 와 닿는 언어를 발견했을 때의 희열을 맛본다. 눈으로 읽다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형광펜으로 긋고,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을 노트에 기록한다. 나이가 들면서 감정선이 유리창처럼 얇고 투명해졌다. 겪은 일이 많아서 불에 달군 쇠처럼 더 단단해져야 하는데 정반대이다. 작년 겨울 친구의 죽음은 슬픔의 늪이었다. 오랫동안 가슴앓이를 하면서 마음의 창이 얇아졌다.

휴식기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페미니즘 책을 읽다가 지루한 분위기를 빠져나와 B 선생님의 수필선집 `빛나는 빛'을 읽었다. 오롯이 한 편 한 편의 글에 집중해서 읽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필자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문장이 지면을 빠져나왔다. 같은 책이라도 읽는 때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선다니 정말 그랬다. 지금까지 받았던 책을 한 권씩 다시 읽었다. 수필을 배우러 외지에서 찾아오고, 음성에서 수필의 대모로 불리며 문학비까지 세워질 정도의 위상이 지나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의 궤적을 담담히 써 내려간 문장에서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나오는 지혜에 감탄하고 감탄할 뿐이다. 아마도 나의 감성과 잘 맞아떨어져서 그러했으리라. 학창시절 시를 쓰는 취미가 이어져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럴듯한 말을 꿰맞추며 자만심으로 시작한 시쓰기는 시를 알게 되면서 점점 어려웠다.

선생님을 만나면서 수필을 쓰기 시작했다. 넓고 깊은 곳을 보지 못하고 일상생활을 탈피하지 못한 채 수필도 제자리고 시 쓰기도 형편없었다. 뒤늦게 시어처럼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하며 삶의 갈피, 갈피에서 진실을 마주하는 선생님의 글에 매료되었다. 미사여구에서 그치지 않는 힘이 느껴졌다. 글에서 삶의 혜안으로 가르침을 주는 스승의 필력이 이제야 보이다니 무지한 글쟁이로 취미랍시고 자랑삼아 내보였다는 부끄러움이 앞섰다. 이십여 년 함께 보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한 수필의 거목을 또 한 번 우러른다.

일상을 매섭게, 그러나 부드럽게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과 감성의 언어는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필자의 것이었다.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선 도인을 만난 듯 경이로운 문장을 만날 때는 내게도 전율이 온다. 그릇에 차고 넘치는 욕심을 덜어내거나 애면글면 미운 이를 쫓는 방편으로 글을 읽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고뇌가 깊다. 한량없이 펼쳐진 지식의 세계에 빠져 이것저것 탐할 요량으로 마음만 바쁘다.

몇 년 전, 시골집을 처분하면서 시어머니께서 남긴 간장을 막내 시누이가 챙겼다. 오십 년 넘는 세월을 항아리에 담겨 검은빛으로 진해진 간장 일부를 건넸을 때 무덤덤하게 받아서 싱크대 깊숙이 넣어 놨다. 책을 읽다가 문득 간장이 생각났다. 유리병 뚜껑을 힘겹게 열어 손가락 끝에 간장을 찍어 맛본다. 소금 결정이 생긴 시커먼 간장 맛은 진하고 씁쓰름했다. 오래된 간장은 음식재료의 용도로 사용하기보다 약을 복용하듯이 섭취한다고 한다. 시간의 깊이를 더한 간장처럼 약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는 기본을 무시했다. B선생님의 글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주변인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다. 지금까지 곁을 주지 않고 앞만 보고 살아온 것이 잘한 것만은 아니라는 뉘우침으로 이어졌다. 지천명을 넘어서 주변을 돌아보다니 낯이 뜨겁다.

책장 앞에 서서 그동안 모아 온 선생님의 책을 살펴본다. 지금 보니 제목마다 인생을 함축적으로 담아 낸 호소력 짙은 언어가 박혀 있다. 선생님은 항아리 가득 차고 넘치는 간장을 오래 묵혀 두고 꺼내 쓰나 보다. 닮고 싶은 깊이를 어찌 따라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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