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 돌에 부침
강가 돌에 부침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0.08.3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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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사람은 태어날 때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태어나 보니 주변에 인물도 있고 사물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들과 접하며 관계를 설정해 간다. 돈벌이와 출세에 대한 생각도 당연히 그 과정에서 형성된다. 이렇게 해서 세속적 가치에 매몰 되기 일쑤지만, 간혹 탈속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조선(朝鮮)의 시인 홍유손(洪裕孫)은 세속을 떠난 공간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

강가 돌에 부침(題江石)

濯足淸江臥白沙(탁족청강와백사) 맑은 강물에 발 씻고 흰 모래에 누우니
心身潛寂入無何(심신잠적입무하) 심신이 가라앉고 고요해 텅 비는구나
天敎風浪長喧耳(천교풍랑장훤이) 하늘이 풍랑 소리 귓가에서 끊이지 않도록 하니
不聞人間萬事多(불문인간만사다) 번잡한 속세의 소리 들리지 않는구나

세속의 사람들이 발을 씻기도 하고, 누워 쉬기도 하는 곳은 보통의 경우 기거하는 집이다. 그러나 시인은 집이 아닌 강가에서 발을 씻고 몸을 눕혀 쉰다. 인위적 공간이 아닌 자연에 몸을 맡기고 사는 것인데, 이는 시인의 평소 로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시인이 자연 속의 삶을 추구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마음과 몸이 평온하고 고요해져 텅 빈 무하(無何)의 경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가에서 사는 것인데, 그곳에서는 하늘이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을 시켜 시인의 귀를 시끄럽게 만든다. 시끄러운 것은 흔히 회피의 대상이지만 여기서는 사정이 다르다. 귀에 거슬리는 세속의 시끄러움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가려 주는 자연의 시끄러움이니 시인에게 큰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고마운 시끄러움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로 길들여지지만, 그 본성 속에는 사회로부터 떨어져 홀로 살고자 하는 로망이 잠재되어 있다. 이것이 발현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생명체는 결국은 혼자라는 것이다. 사회를 벗어나 홀로 사는 것이 본성에 부합한 것이니, 이는 결코 회피할 일만은 아니다.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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