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0.08.3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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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청첩장을 받았다. 아들의 결혼식을 알리는 친구의 초대장이다. 축하를 해주며 함께 기쁨을 나누어야 할 일인데 머뭇거린다. 망각하고 살다시피 한 내 나이가 화두로 툭 던져진다. 어느새 와 있는 여기는 어디인가. 지금 내 삶의 속도는 56km로 빨라 지나는 풍경을 제대로 곁눈질 할 수가 없다.

나에게도 풋풋한 청춘이 있었는지. 삼십대, 사십대의 시간도 가뭇하다. 단지 세월의 흐름을 서른이 된 아들의 나이로 실감한다. 이를 어찌 부인할 수가 있으랴. 변화되는 나를 거부하고 싶어도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 세상 만물과 사람을 모두 가혹하게 바꾸는 시간 앞에 경건해진다.

흰 머리가 늘어나고 앉았다가 일어날 때면 비명이 새어나오는 나이. 셋만 모여도 몸에 좋다는 식품에 열을 올린다. 하나, 둘 건강의 이상으로 약봉지가 늘어나기 시작하는 나이. 고혈압은 내 몸의 첫 이상신호였다. 살다보면 예기치 않은 곳에서 불쑥 불거져 나오는 일들이 많다. 전혀 걱정을 해 본 적이 없는 예고 없이 들이닥친 불청객이었다.

처방전으로 의사는 운동을 채근했다. 나 혼자서 무엇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소극적인 내가 시작한건 집에서의 워킹머신이었다. 실내에서 한 시간을 채우기가 왜 그리 지루하고 버거운지. 얼마 가지 않아 포기하면서 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왔다. 달포를 망설이다 가게 된 음성천이었다. 서너 해를 걷다보니 익숙해져 있는 나를 발견한다.

고혈압은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를 바깥으로 끄집어내는 변화를 준 숙주다. 내 몸에 기생하며 나를 에워싸고 있는 껍질을 깰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세상에 더 당당해지는 나로 바뀌게 해 주었다. 아예 공생관계로 살 생각이다.

올해의 여름은 땡볕을 걷는 게 엄두가 나질 않는다. 삼림욕장의 둘레길이 시원하고 좋다는 말이 귀를 간질인다. 외져서 홀로 내키지 않아 주저하고 있는 나를 다시 또 한 번 질끈 용기를 준다. 산그늘이 내려앉아 있어 운동이라기보다 산책하기에 좋은 길이다. 날벌레의 무차별 공격은 단맛의 대가로 흔쾌히 받아들인다. 나무의 향과 풀냄새가 싱그러워 새로운 노선이 마음에 새로이 들어선다.

지금의 나이가 되면 세상 풍파에 시달릴 만큼 시달려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괜찮을 줄 알았다. 갈래 길에 서면 전보다 더 망설이고 가는 길이 옳은지 자신이 없다. 새로운 일의 선택 앞에선 늘 문치적댄다. 갈수록 더 어렵고 힘든 여정이다. 참, 홀로서기 힘들다.

아직도 여전히 바람이 분다. 지금도 나는 흔들리고 있다. 세상이 언제쯤이면 만만해질까. 더께가 앉은 위에도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작은 바람에도 휘청댄다. 수없이 부딪히고 넘어지며 걸어 온 길. 아직도 더 아픔이 남아있음을 예까지 와서야 알았다.

괜찮다. 아마 나무도, 꽃도 흔들리며 피었다지. 더욱이 사람이랴. 흔들리며 가는 게 인생이라면 점점 속력이 더해지는 내 삶을 즐겨볼 요량이다. 나만의 속도로 최선을 다해야 최고의 오늘이 되는 법이니까. 적어도 내 인생이 후회되지 않도록 말이다.

요즘, 혼자인 날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롯이 나와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 나로 살아가는 기쁨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도록 스스로를 허락해 주는 것이라 한다.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기, 그리고 나 자신으로 살기, 나의 빛을 최대한 밝히라고 책에서 조언한다.

그이와 아들로 하여 내가 빛날 날이 올 거라 기대하며 살아온 세월들. 이제 나의 사랑을 빌미로 아들에게 치우치지 않고 한 남자의 아내로 얽매이지 않을 일이다. 가족의 사랑, 그 안에서 진정한 나로 살리라. 나의 빛을 밝혀 스스로 환해지리라.

청접장 속 두 사람이 눈부시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스르르 눈이 감긴다. 손을 꼭 잡은 둘의 모습이 비행기 창문에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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