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산업·교통 대변혁 `기적 울렸다'
지역산업·교통 대변혁 `기적 울렸다'
  • 엄경철 기자
  • 승인 2020.08.27 1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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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시리즈 / 충북경제 100년사 -소금배에서 KTX까지
③ 충북 근대경제 동맥-철도(충북선)
경부선 조치원역~중앙선 제천 봉양역 129.2㎞ 연결
일제강점기~해방후 건설사업 … 지역경제 직·간접 역향
복선화·전철화 등 여객보다 화물수송 … 산업철도 기능
청주역 두번 이동 … 시청부근 위치땐 도심 중심지 역할
옛 청주역(현 청주시청)
옛 청주역(현 청주시청)

 

철도는 오랫동안 수운(水運)에 의존했던 충북의 교통수단을 바꾸어 놓고 산업에 영향을 미쳤다.

경부선과 중앙선을 연결하는 충북선은 1905년 경부선 개통 16년 후에 부설작업이 시작됐다.

일제강점기 사설철도회사인 조선중앙철도주식회사에 의해 경부선 조치원역~청주역의 22.7㎞ 구간이 1921년 11월에 개통됐다.

이후 청주역~천안역(1923년), 청안역~충주역(1928년), 충주역~봉양역(1958년)이 순차적으로 개통됐다.

충남 연기군의 경부선 조치원역과 충북 제천시 중앙선 봉양역 129.2㎞의 우리나라 대표적인 간선철도가 연결된 것이다.

이후 교통수요가 증대되면서 복선화가 추진됐고 2005년 전 구간이 전철화됐다.

충북선은 강원도 태백산지와 영동지방을 전국으로 이어주는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동시에 산업철도로서 충북 지역경제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충북선은 1920년대 사설 철도회사와 부설면허권이 있는 조선총독부가 충북 내륙지역의 주요도시 연결로 교통편리, 지역개발, 농산물 및 자원 유출을 위해 추진됐다. 하지만 해방 이후인 1955년 중앙선과 연결되면서 충북선은 중앙선과 경부선을 잇는 중요한 산업철도 기능을 하게 된다. 충북선의 복선화 및 전철화 역시 여객 수송보다는 화물 수송이 주요 목적이었다.

인력과 자본유입 촉진에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있기는 하지만 충북선 부설은 오랫동안 수운에 의존했던 충북의 내륙 교통수단을 획기적으로 바꾼 대역사였다.

충북선의 연장, 복선화, 전철화 과정에서 가장 변화가 심했던 지역은 청주 도심이다. 청주 도심을 통과하던 선로가 외곽으로 옮겨가면서 3곳의 역사가 폐쇄됐다. 청주역도 두 번 이동했고, 폐기된 선로는 간선도로로 활용됐다. 청주역은 충북선 영업 초기에는 현재의 청주시청 부근에 위치해 청주시의 중심역으로 이용객이 많은 역이었다. 일제강점기 역 주변에 시장이 들어설 정도로 유동인구가 많았다.

충북선 부설 전후 시기의 신문(1920~1966년)에 충북선 관련 기사들이 대거 등장해 지역의 큰 관심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매일신보(1926년 8월 6일자)에는 충북선 공사 노동자 수가 게재됐다.

매일신보는 “충북선 연장공사로 본년 4월 기공이래 충주 관내에서 철도부설을 위해 사용된 노동자는 연인원 14만933명, 인부 총임금은 12만1276원, 현재 사용인부는 661명이다”고 다뤘다.

1929년 1월18일자에는 충북선 철도 연장운동 기사가 실려 “충북선 철도를 청안~충주 간 연장함에 대하여 제천지방 유지는 제천까지 철도연장을 위해 11일 오후 6시에 제천공회당에서 회의를 개최하였다”고 전했다.

1934년 11월23일자 `청안역 낙성식 거행'기사는 “충북선 청안역사는 지방민의 요망으로 조선철도회사에서 1만원을 공사비로 투자해 9월1일부터 공사에 착수했는데 지난 13일 낙성되어 증평번영회 주최로 낙성축하회를 본일 개최하였다”고 당시 민간단체 주최로 행사를 치른 내용을 보도했다.

1957년 다른 신문에는 충북선 연장공사현장답사기가 실렸다. 당시 철도부설공사현장 중 한 곳인 박달재터널(1㎞)과 절개지 공사현장의 난공사 상황, 기술인부들이 비싼 일당 1천원을 받았다는 것과 인근주민, 군인들까지 인부로 참여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는 기사를 현장르포형식으로 상세히 다뤘다.

또 공사착수 이전에는 인적도 찾기 힘든 심산지대에 착공 이후 각 공사 사무소를 중심으로 노무자들의 합숙과 식사를 위한 초라한 판자집과 토막(土幕)이 아침저녁으로 연기를 내뿜는 속에서 노무자들의 가족이나 혹은 북한 피난민들이 경영하는 주류판매소와 잡화점이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있어 임시나마 산골부락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충북선 철도를 건설하는 대역사가 이어지면서 지역경제에 직간접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을 엿볼 수 있다.

/엄경철 선임기자
eomkccc@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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