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없어야 하는 이유
영웅이 없어야 하는 이유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0.08.26 1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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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상식이 통해야 공정한 사회인가? 공정해야 상식이 통하는 사회일까?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이 당연하지 않은 사회일수록 영웅이 등장한다.

허균의 소설 속 홍길동이 도적임에도 영웅이 되었던 이유는 조선시대 연산군 시절 불합리한 서얼 차별과 백성에 대한 가혹한 수취, 국방에 대한 부실 등의 개혁을 주장하며 국왕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로지 백성뿐이라고 역설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임꺽정 역시 도적이지만 영웅으로 불렸다. 그 역시 정치적 혼란과 흉년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관아를 습격하고 창고를 털어 빈민에게 나누어 주는 등 의적 활동을 벌였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불안하고 혼란스러울수록 대중은 영웅의 등장을 갈망한다. 그리고 특별한 것 없는 사람도 영웅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모순된 사회적 구조와 기회불평등, 소득격차가 심할수록 영웅을 기다리는 심리는 더욱 커진다. 어찌 보면 `영웅'은 대중의 잠재된 불만을 대신 해소 시켜주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존재가 아닐까?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팬데믹에 빠졌을 때 두터운 방호복을 입고 쪽잠을 자면서도 묵묵히 환자를 돌보는 의료인을 우리는 진정한 숨은 영웅으로 불렀다.

어린이, 교사, 학생, 직장인, 기관단체 등 너나할것 없이 수어로 `존경합니다'라는 의미로 손바닥 위에 다른 한손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의료진을 격려하고 응원하기 위해 덕분에 챌린지에 동참했다.

중소기업나눔 재단은 아예 지난 3월 1000만원의 상금을 걸고 아예 전 국민을 감동시킨 미담 주인공을 발굴하겠다며 `코로나19 속 영웅발굴 공모전'을 추진하기도 했다.

영웅도 오래가진 못하나 보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정부는 공공의대 설립 등을 통해 10년간 총 4000명의 의대정원 확대 방침을 발표했고, 이로 인해 진정한 영웅으로 불렸던 의료진들은 한순간 이기적 집단으로 몰렸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현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정부의 일방적 정책을 두고 국민의 건강을 위협할 것이라며 집단행동을 벌이고 있고, 정부는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위협한다며 의료진들의 집단행동을 문제 삼고 있다.

정부와 의협 간 줄다리기에 국민은 안중에 없다.

이와 함께 한국교총은 정부·여당이 설립 추진 중인 공공보건의료대학 신입생 후보를 시·도지사와 시민단체 등이 추천하도록 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를 두고 생명 다루는 의사 양성조차 진영논리를 적용해선 안된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한국교총은 26일 성명을 발표하고 “현 정부가 주창한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상”이라며 “공정의 칼을 빼든 정부가 공공의대 학생 선발에 시도지사와 시민단체에게 추천권을 주겠다는 것은 내로남불의 전형이며 공정성을 훼손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면 영웅은 없어야 한다. 영웅이 없는 국가는 성공한 국가다.

상식을 행해온 것만으로 영웅으로 칭송하려는 것은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의도인지도 모른다.

폭우로 인한 수해를 두고 여당은 이명박 전 정권에서 추진한 4대강사업 탓이라고, 야당은 현 정부가 추진한 태양광 사업 탓이며 책임 공방을 벌이는 이유도 여기 있다. 정치권은 잘하면 내 탓, 잘못하면 남 탓을 한다. 정치권에서 상식을 지키지 않는 게 상식으로 여기니 국민은 늘 영웅을 기다린다. 기회의 평등이 이뤄지지 않고 과정이 공정하지 않다고 여기니 제2의 홍길동을 기대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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