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종교칼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5.29 09: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 자의 목소리…눈먼 임금님과 눈물
김 훈 일 주임신부 (초중성당)

옛날 한 임금님이 계셨는데 연세가 그리 많지 않았으나 시력이 약해지더니 점점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거의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온 백성이 걱정했고, 나라의 유명한 의원들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치료했으나 모두가 허사였습니다. 의원들이 손을 놓고 포기할 즈음해서 어느 날 한 노인이 대궐 앞에 찾아 와 임금님의 눈을 진찰하겠노라고 청했습니다. 청원이 받아들여져 결국 임금님에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임금님의 얼굴과 눈을 유심히 살펴 본 후 어떤 진맥이나 약 처방도 없이 이렇게 한마디 말을 했습니다.

"눈물을 흘려야 낫습니다."

그리고는 그 노인은 떠나갔습니다. 임금님과 신하들은 괘씸한 마음이 들었으나 그 노인의 진지한 표정과 근엄한 말에 압도되어 떠나는 그의 뒷모습만 바라 볼 뿐이었습니다.

임금님은 밑져야 본전이니 눈물을 흘려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임금님은 생각해 보니 근래에 눈물 흘린 기억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연극배우들과 이야기꾼들을 불러 슬픈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고통을 겪는 백성들에 관한 이야기에 조금도 슬픔을 느낄 수 없었고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은 "세상에! 내가 이렇게도 무뎌져 있단 말인가. 내가 이리도 슬픔을 느낄 수 없고, 눈물을 흘릴 수 없단 말인가."

자신의 돌같이 굳은 마음, 얼음 같이 차가운 감정, 남의 슬픔에 대해 그렇듯 무관심하고 무반응 하는 자신의 비인간성과 무자비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슬퍼졌습니다. 이때 한 방울의 눈물이 눈에서 흘러 내렸고, 이어서 몇 방울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임금의 눈이 빛이 보이면서 뭔가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리면서 조금 더 낫게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젠 남의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 흘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임금님은 슬픈 사람, 고통스런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함께 마음 아파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임금님은 정상적인 눈으로 회복되어 잘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눈물이 없는 곳에 사랑이 고갈되고 그래서 사랑의 눈이 멀게 되며, 어려움과 슬픔 중에 고뇌하는 형제, 가족, 이웃을 볼 수 없습니다.

또한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을 볼 수 없습니다. 눈물은 사랑, 정, 이해, 나눔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반성과 뉘우침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우리말에 '눈이 멀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재물에 눈이 멀었다'든가 '권력에 눈이 멀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과욕을 부릴 때, 이성이 흐려지고 마음의 눈, 지혜의 눈이 흐려 판단을 제대로 못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 예수님은 눈을 가졌으되 볼 수 없는 눈, 귀를 가졌으되 들을 수 없는 귀, 입을 가졌으되 말할 수 없는 입을 가진 인간들의 고집, 아집, 굳은 마음을 지적하시면서 회개하길 요구하십니다.

마음의 눈을 먼저 떠야 합니다. 세상이 아름답고 가족과 이웃이 사랑스럽게 보이려면 욕망에 찬 눈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먼저 우리 마음의 창을 깨끗하게 닦아내는 사회를 만드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