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종교와 이데올로기
바이러스, 종교와 이데올로기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8.25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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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이 바이러스는 민주적입니다. 그래서 빈자와 부자를 가리거나 정치가와 일반 시민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불안한 분쟁의 나라 이란의 보건부 차관 아라즈 하리치르는 처음에는 코로나19를 우습게 봤다. 광범위한 확산에 대해 별로 경계하지 않았고, 그러므로 대규모 격리도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리고 이를 코로나19에 대한 이란 정부의 공식입장으로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그는 바로 다음날 다시 TV에 등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면으로도 충분히 발열과 쇠약 증세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허약해진 그는 자신이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자가격리에 들어갔다는 짧은 성명을 발표하면서 바이러스의 특성을 위와 같이 언급했다.
민주적인 바이러스는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상대방의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며, 결코 포용하거나 양보하는 일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소수 의견을 존중하면서 다수결에 의해 선량한 방식으로 의사를 결정하거나 나아갈 방향을 예측하는 일도 바이러스에게는 기대해서도, 기대할 수도 없다.
정치가와 일반 시민을 구분하지 않는 건 맞다. 조심하지 않고 함부로 경거망동한다면 정치인이라고 예외일 수 없고, 생활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면 일반 시민이라고 차별하면서 유난하게 공격하는 일은 없다.
다만 빈자와 부자의 차이는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니, 가난한 사람들에겐 ‘병에 걸려 죽느냐, 굶어 죽느냐’의 고비를 택해야 하는 비극이 있다. 게다가 부자들은 코로나19를 기화로 궁핍한 노동의 가치를 함부로 흔들고 있다. 
코로나19가 재 확산되면서 사람들을 더 큰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급기야 나라 전체 동력이 멈춰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커지고 있는데, 가짜뉴스와 편집광적인 종교관, 낡은 이데올로기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더불어 인류 공공의 적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처음에 둘 다 순수했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그 시작은 핍박받는 가난한 백성과 이를 구원할 메시아의 등장에서 비롯된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난을 피하지 않은 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그렇고, 부자의 헤픈 대접을 받아 생사의 갈림길에 놓일 것을 미리 알면서도 죽음의 길을 택한 석가모니 역시 그렇다. 생명의 한계를 초월하면서 가난하고 힘없는 쪽에 치우쳐 있는 인류를 구원하고 깨달음을 설파하려는 종교의 시작은 숭고하다.
이데올로기 또한 마찬가지다. 개인이나 사회 집단의 사상과 행동을 이끄는 관념이나 신념의 체계가 이데올로기이다. 이데올로기는 각각의 특성에 따라 (대부분 사회적으로 낮은 집단에 속한)인간의 가치와 윤리, 도덕성,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적 보편성을 추구하는 착한 뜻으로 시작한다.
인간을 향하는 숭고한 가치와 인류애를 지향하는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그러나 정작 인간과 만나면서 자기 안의 세계에 갇히고 타락함으로써 결국 ‘악의 평범성’의 모순을 만들면서 인간을 고통스럽게 한다.
오늘날의 종교나 이데올로기는 철저하게 배타적인 가치관과 차별적인 윤리의식, 편 가르기에 골몰하는 불평등과, 다른 것들에 대해 다분히 공격적인 비도덕성의 세계로 침몰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기형적 만남에서 비롯된 무차별적 코로나 바이러스의 침공으로 일상으로의 회복조차 기약하기 힘든 공포의 시절을 살고 있다.
평소 같으면 금이야 옥이야 금쪽같은 손주들의 안위도 안중에 없고, 절대 신과 인류 공동의 보편적 가치와 철학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 대신, 절대 권력의 목사와 극단적 반공주의자를 막무가내로 맹신하며 타락하고 있는 일단의 무리들과 지금 우리가 섞여 살고 있다.
불안과 공포는 더 커지고, 일상으로의 회복은 점점 더 기약하기 힘든데 언제까지 이들의 난동을 내버려 둘 것인가. 세상이 멈추기 전에 이들을 단죄해야 한다는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직 우리 안에 있다. 미꾸라지를 잡아내지 않고 흙탕물이 맑아질 수 있겠는가. 두루 마스크를 쓰고, 멀리 거리를 두면서 안간힘으로 견디는 착한 사람들의 두려움이 커지는, 이 여름은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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