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갈림길을 가든
어느 갈림길을 가든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0.08.2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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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비가 오면 마음도 젖는다. 그리고 자꾸 돌아보는 기억이 생기곤 한다. 할 일 없는 사람처럼 책장을 구경하다 작년 교육 프로그램 종강식이 끝나고 함께 공부한 도반에게 선물 받은 그림책이 눈에 띄었다. 밋밋한 그림이 마음에 다가오지 않아 대충 훑어보고 꽂아 두었던 이야기. 그날의 무심함이 오늘의 감동으로 다시 가슴을 울린다. `두 갈래 길'라울 니에토 구리디가 쓰고 그렸다. 2018년에 볼로냐 라가치상을 받았다.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어린이 책 전시회에서 주는 상) `그림 시'에 가까운 책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특별히 이 책을 결코 읽지 않으실 독자를 위해 감동적인 서문을 말하고 싶다. `지난 너의 모든 길이 아름다웠기를, 지금 걷는 이 길과 앞으로 걷게 될 길이 모두 눈부시길 바라며'로 책은 시작한다.

이야기는 매우 간단하다. 전문을 옮겨본다.

인생은 길과 같아/ 길 위에는 신기한 것도 많고/ 두려운 것도 많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고/ 잠시 멈춰 고민에 잠길 때도 있어/ 가끔은 굉장히 빨리 지나가/ 반대로 너무 느릴 때도 있지/ 밤처럼 온통 캄캄할 때도 많지만/ 뜻밖의 재미있는 일들도 많아/ 장애물이 나타나기도 하지/ 그래도 걱정은 마, 뛰어넘으면 되니까/ 친구와 다투기도 할 거야/ 온 길을 되돌아가기도 하고/ 말없이 걸어야 할 때도 있어/ 이 모든 길들이/ 너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 줄 거야/ 그 순간/ 인생은……/ 찬란해지지/

어떠신가, 어린이 책이라고 하지만 어른에게 더 필요한 글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글을 읽고 나니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과 오버랩 된다. 프로스트는 자신의 집 앞에 숲으로 이어지는 두 갈래 길을 보고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썼다고 한다. 그 누구도 두 길을 걸을 수는 없다. 한 길에 한번 들어서는 순간, 되돌아올 수도 없다. 라울 니에토 구리디의 `두 갈래 길'은 선택한 한 길을 감에 있어 삶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짧은 글은 좋고 나쁨, 성공과 실패, 선함과 악함의 이분법적인 결과를 말하는 것이 아닌 생 자체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 조언한다. 결국 모든 길은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안내할 거라는 거다. 하지만 일감엔 지난 과거에 상처를 씻어내지 않은 생이라면 새로운 길로 가기엔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어떤 상황이든 새롭고 찬란스러운 관점으로 봐야 하니까.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사람은 파멸 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아'한번 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청새치를 잡아 집으로 항해하는 중에 만나 상어 떼와의 한판 승부를 앞에 두고 하는 독백이다. 물론 산티아고 노인은 청새치 살을 상어 떼에 모두 빼앗기고 빈 털털이로 항구에 도착한다. 우리가 선택한 갈림길이 실패를 더 많이 겪는 삶임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다는 데에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서도 일회성의 항해가 끝이 아니라 위험한 항해는 우리 마지막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계속된다고 말한다. 두 갈래 길 중, 어떤 길에 들어섰느냐가 아니라 들어선 그 길에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고 있는가 자성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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