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륙 충북 … 물길따라 경제활동 `넘실'
내륙 충북 … 물길따라 경제활동 `넘실'
  • 엄경철 기자
  • 승인 2020.08.2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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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시리즈/ 충북경제 100년사-소금배에서 KTX까지
금강 세종시 편입 부용면 `부강포구' 뱃길 종점 역할
서해 생선·소금 - 일용잡화·농산물 등 집결 `교역 중심'
철도개통·금강하굿둑 건설로 기능 상실 … 역사속으로
남한강 충북 북부권~수도권 이어주는 주요 교통수단
충주 목계나루 … 충북선鐵 개설전까지 수운 중심 담당
1909년엔 충주 중심 827척 한강 왕래 `번성기' 누려
충주 목계나루
충주 목계나루

 

교통은 사람·물자이동과 경제 활성화 역할을 하는 경제 동맥이다.

최근 경제활동에 있어 교통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감염병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전 세계가 감염병 방역을 위해 봉쇄정책을 펼쳤다. 각국의 감염병 차단을 위한 봉쇄정책은 글로벌 경제위기를 초래했다. 경제 대동맥인 교통이 감염병이라는 직격탄을 피하지 못하면서 세계적인 경제 마비가 온 것이다.

충북의 근현대 경제사도 교통과 함께 발전했다. 특히 금강과 남한강 수로는 내륙의 충북에 있어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금강의 뱃길은 발원지인 전북에서부터 충남을 거쳐 청주까지 연결됐다. 옛 청원군에서 세종시에 편입된 부용면 부강리 부강포구까지 뱃길이 열렸다. 청주권에서는 내륙의 물자와 서남해안의 물자를 이동시키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부강포구는 금강수운 가항(可航)의 종점이자 충청내륙의 관문이기도 했다. 서해의 어염(魚鹽 : 생선과 소금)과 일용잡화들과 내륙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모였던 교역중심지였다.

택리지(저자 신정일·2012년)는 “부강포구는 3백여 척의 배가 한꺼번에 정박할 수 있었고, 강경이나 군산 등지에서 온 소금과 해산물을 등짐장수들이 안성, 보은, 상주 등으로 가지고 갔다”고 했다.

김신웅 전 청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강포구를 “충청지역 경제발전의 모체와 시원(始原)”이라며 “충청도 내륙 도시의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평가했다.

부강포구 전성기에는 초사흘과 보름에 한 번씩 지내는 배 고사떡만 얻어먹고도 인근 사람들이 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배들이 싣고 온 조기로 부채질하고 미역으로 행주를 삼았으며 명태로 부지깽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해산물이 많았다고 한다.

금강 뱃길 내륙의 종점역할을 했던 부강포구는 철도 개통과 1990년 금강하굿둑 건설로 물길이 막혀 기능을 상실,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남한강은 충북 북부지역의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강원도 정선, 평창, 영월, 충북의 단양, 제천, 충주, 괴산, 경기도 여주, 이천, 양평 등 수도권을 잇는 수로였다. 교통수단은 돛단배와 뗏목이었다. 강원도와 충북 북부, 경기지역의 남한강 수계의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충주 목계나루는 서울~충주간 충북선 철도가 개설된 1930년대 이전까지 남한강 수운의 중심이었다. 최고 번성기때 800여가구가 살았던 목계는 일제강점기까지 장이 서고 450여가구가 살았던 물류교역중심지였다. 기록에 의하면 1909년 충주를 중심으로 한강을 왕래한 선수는 영춘 65척, 단양 71척, 청풍 441척, 충주 250척으로 총 827척이었다. 1913년 내국통운주식회사 소유 선박 돛단배 8척이 충주-용산(서울) 간 화물을 수송했는데, 배는 50석, 40석, 30석, 25석을 실을 수 있는 규모였다.

1930년대 목계에 들어온 물품은 광목·비단·포목·고무신·소금·건어물류, 어물류(조기·새우젓·굴젓·명태·청어·고등어)·양잿물 등이었고, 나가는 물품은 쌀·콩·조·옥수수·감자·참깨 등 곡물류와 무·배추·참외·수박 등 채소류이다.

당시 언론보도에서 남한강 수운이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한 신문(1917년 3월 7일자)은 `남한강 해빙(南漢江 解氷)'이라는 제목으로 “경기도 여주(驪州管內)를 관통하는 남한강은 작년 12월26일 이래로 결빙되야 빙상교통을 하던바 요사히 일기가 풀리며 빙상교통이 위험함으로 일부 얼음을 제거하고 2월27일부터 각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부리기 시작하야더라”고 보도했다.

당시 충북 북부지역의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남한강이 겨울철 얼어붙어 수로교통이 어려워지자 빙상교통을 했었다. 봄철 얼었던 강이 녹으면서 빙상교통이 위험해져 나룻배를 이용한 수로교통이 재개됐음을 알리는 내용이다.



/엄경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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