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계의 인증-법인절
법계의 인증-법인절
  •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 승인 2020.08.2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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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8월 21일은 원불교의 4대 기념일 중 하나인 `법인절'이다. 법인절은 원불교의 역사 중 유일하게 기적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날의 기록을 현재의 언어로 묘사해 보았다.

방언공사(간척사업)가 끝났을 때 9인 제자는 들뜬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막일을 해 본 적도 없었던 그들이 바다를 논으로 만든다고 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고 오히려 조롱을 당해왔던 터였다. 그들 스스로도 마음속으로 정말 가능한 일일까라는 의문마저 드는 일이었다. 수많은 역경과 고난이 있었지만 결국 해 내고 만 것이었다. 들뜬 기분이 가라앉기도 전에 소태산 대종사는 9인 제자를 불러 모았다.

“지금 물질문명은 그 세력이 날로 융성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의 정신은 날로 쇠약하여 장차 창생의 도탄이 한이 없을지니 세상을 구할 뜻을 가진 우리로서 어찌 범연히 생각하고 있으리요. 그대들은 이때를 당하여 전일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모든 사람의 정신이 물질에 끌리지 아니하고 물질을 선용하는 사람이 되어주기를 천지에 기도하여 천의를 감동시켜 볼지어다.”

그렇게 기도는 시작되었다. 중앙봉과 그 주변의 여덟 봉우리에서 각자 같은 시간에 기도를 시작하고 끝냈다. 3개월쯤 지났을 때 소태산 대종사는 제자들에게 아직 기도에 사념이 남아있음을 지적하고 죽음으로써 천의를 감동시킬 것을 말씀하였고 제자들은 쾌히 응하였다. 제자들은 몸이 죽어 없어진다 하더라도 정법이 세상에 드러나서 모든 창생이 도덕의 구원만 받는다면 조금도 여한이 없었다.

약속한 날이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눈빛들이었다. 결연한 의지가 사방의 공기를 순간 일렁이게 만들었다. 무릎을 꿇고 앉은 아홉 명의 제자 앞에는 그 시절에 보기 어려운 회중시계와 날이 바짝 선 단도가 각각 놓여 있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한지를 꺼내 `사무여한(死無餘恨-죽어도 여한이 없다)'이라는 글자를 쓰고, 제자들에게 백지장(白指章-인주나 물감이 없이 찍는 행위만 하는 손도장)을 찍게 하고는 마지막 심고(마음으로 고하는 일)를 드리게 하였다. 이제 각자의 기도 장소로 가서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자결하는 일만 남았다.

단도와 시계, 기도 도구를 행장에 꾸리고 9인 제자는 길을 나섰다. 머릿속에는 오직 소태산 대종사가 한지에 쓴 `사무여한'이라는 글자뿐이었다. 조금의 후회나 마음에 걸림이 있었다면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될 일이었다.

“돌아오라.”

귀를 거치지 않고 고막의 울림도 없이 머릿속 전체를 파동시키는 스승의 음성이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소태산 대종사는 `사무여한'을 쓰고 백지장(白指章)을 찍게 했던 종이를 들고 있었다. 분명 백지장(白指章)을 찍었는데 혈인(血印)이 어려 있었다. 9인 제자들의 선명한 혈인(血印)이었다.

“이것은 그대들의 일심에서 나온 증거이다. 그대들의 몸은 죽었고 그대들의 마음은 천지신명이 이미 감응하였으며 음부공사가 이제 판결이 났으니 우리의 성공은 이로부터라.”

소태산 대종사는 9인 제자에게 법호와 법명을 내려 주고 원불교 회상 창립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오늘날 원불교가 100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4대 종단으로 인정받고 세계교화를 향해 힘차게 도약하고 있는 것은 원불교 교도의 가슴속에 9인 선진이 보여준 창립정신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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