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하는 말
고양이가 하는 말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20.08.19 2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정명숙 수필가

 

어느 해 겨울, 눈이 퍼붓듯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흰털에 검은 무늬의 어미 고양이가 윤기 없는 털에 앙상한 모습으로 마당에서 어슬렁거렸다. 현관문 여는 소리에 놀라 달아나는 데 늘어진 빈 배만 보였다. 신경이 쓰였지만, 집안에서 애완견 세 마리를 건사해야 하는 처지여서 들고양이한테까지 관심을 둘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미가 자꾸 눈에 밟혔다. 새끼는 몇 마리나 낳았는지, 젖은 제대로 나오는지 걱정이 되었다. 식구들이 먹어야 할 밥을 그릇에 담아 마당 한쪽에 놓고 창밖을 살폈다. 고양이는 소리 없이 내리는 눈처럼 기척 없이 다가와 허겁지겁 먹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며칠 후에는 새끼 네 마리를 데리고 와서 나를 빤히 쳐다본다. 열악한 환경에서 새끼를 키워야 하는 어미의 모성본능이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하게 만든 것이다. 예전, 고양이는 요물이라는 할머니 말씀에 아주 싫어하던 고양이었지만 애처로운 눈빛에 강아지 사료를 갖다 주었다. 그 무렵부터 그들 외에 다른 고양이들도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열 마리가 훌쩍 넘고야 말았다. 남은 밥으로는 감당이 되질 않아 본격적으로 사료를 사다 먹인지가 사 년이 넘었다.

들 고양이의 수명은 오 년 미만이라 한다. 처음 왔던 어미는 보이지 않는지가 오래되었다. 지금은 그 새끼들이 자라 또 새끼를 낳아 데리고 온다. 동네 사람들이 눈치를 주며 마땅찮아 해도 산 생명을 굶어 죽게 할 수 없어 내 집을 찾아오는 녀석들의 켓맘 노릇을 한다. 이젠 밥을 주는 사람으로 각인되었는지 내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마당에 있던 고양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가르릉거린다.

어느 날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쥐를 잡아 현관 앞에 물어다 놓고 자랑스럽게 돌아서서 실눈을 뜨고 바라보기도 하고 사료를 들고나가면 내 다리 사이를 빠져 다니며 몸을 비비기도 한다. 고양이 덕분에 집 주변에 수시로 출몰하던 뱀도 사라지고 집안에까지 들어오던 지네도 올해는 눈에 띄지 않는다. 한 사람을 자기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랑한다는 고양이와 나는 서로에게 친절을 베푸는 상생의 관계가 되었다. 헌데 얼마 전에 새끼를 낳은 어미 한 마리와 애증의 관계로 변해 버렸다.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던 날, 그날도 빗줄기가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마당에 주차해 놓은 차를 후진시키고 앞을 보았다. 새끼 한 마리가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다. 비를 피하기 위해 차 밑에 있다가 미처 피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빗속에서 한 생명이 꺼지고 있었다. 떨어진 곳에서 어미가 그 광경을 지켜보다 슬그머니 자리를 떠난다. 새끼 때부터 내게 밥을 얻어먹고 자라 제 새끼를 낳아 믿고 찾아온 곳에서 자식을 잃었으니 얼마나 참담할까. 외곽도로에서 로드 킬을 당한 동물의 흔적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고 안타까웠는데 내 집 마당에서 그러한 일이 벌어졌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어 외출을 포기하고 어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들 고양이의 생명을 돌보는 일이 상처가 되었다.

어미는 돌아와 남은 새끼들을 돌보며 밥을 먹는다. 미안해하는 나를 보며 하악질을 하는 눈 속에 원망스러움이 촉촉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