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코로나19, 위험한 여름
장마와 코로나19, 위험한 여름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8.18 2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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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무서워야 한다.'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 사랑은 감사의 유대에 의해 유지되지만, 사랑은 지나치게 이해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한 기회가 생기기만 하면 이 유대는 끊어버린다. 그러나 공포는 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유지되며 이것은 늘 효과적이다.”

`군주론'의 마키아벨리가 한 말이 문득 떠오르는 현실이 다시 두려워진다.

50일 넘게 우리를 지배해왔던 장마가 지나고 청명한 하늘이 반가운 것도 잠시 폭염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정상의 상태라면 더위쯤이야 여름이면 어차피 겪는 일이고, 햇볕 쨍쨍하니 진흙탕에 폐허가 된 살림살이의 때를 벗기기 좋은 날씨로 위안을 삼을 수도 있겠다. 비는 당분간 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이니 끊어지고 무너지며 깊은 상처를 드러냈던 삶의 터전을 회복시키는 일에도 얼마간 도움이 될 듯싶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다시 온 나라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고 있는데다, 심지어 신천지 광풍 때보다 훨씬 위험이 크다는 경고는 두려움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게다가 아무도 그 끝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커지면서 곳곳에서 살아남는 일에 대한 걱정을 하소연하는 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당초에 나는 장마와 코로나19의 현상적 차이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에 대한 가치를 이번 주 `수요단상'의 주제로 삼으려 했다.

장마는 거칠고 탁한 물줄기라는 형태로 가시화되기는 한다. 장대 같은 비는 두 달 가까이 그칠 줄 모르고 퍼붓고, 안전을 충분하게 고려하지 않고 자연의 경계를 침범한 인간의 터전은 무너지고 터져 나갔으며, 인공의 구조물들은 예고 없이 사람 사는 세상을 물바다로 휩쓸어 버리는 형태의 붕괴를 흔적으로 남겨 놓았다.

코로나19는 아직도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현미경을 들이대야만 그 바이러스의 흔적을 겨우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국지성 호우라는 특성이 해마다 농후해지는 장마는 그로 인한 뚜렷한 공간의 경계로 차별되면서 사람 사는 세상 사이에 편 가름을 한다.

보이지 않는 코로나19는 따라서 공간을 경계할 수 있는 구분의 틈조차 아직은 인간에게 주지 않는다. 다만 인간과 인간의 접촉이거나 대면, 안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공유하는 공간에 대한 위험을 예고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비록 보이지 않지만 코로나19 역시 경계해야 할 공간이 엄연히 있다.

자신들만의 구원을 갈망하는 일부 교회가 그렇고, 순간적 쾌락을 인내하지 못하는 이태원 클럽이 그랬으며, 습관처럼 길들여진 인기 절정의 미제 커피전문점은 보이지 않게 우리를 엄습하는 욕망에 대해 경고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장마가 덮친 억울한 공간에는 그래도 인간 공동체를 확인할 수 있는 행동이 있다. 제대 날짜를 미루고 복구에 땀을 흘리는 국군이 있고, 그래도 아직은 제 할 일을 제쳐놓고 찾아와 구슬땀을 흘리는 자원봉사자의 물결도 있다.

그 사이, 함부로 세상을 대하며 그들만의 믿음으로 고립된 종교적 행위가 코로나19의 재확산을 불러일으키는 바람에 수마보다 훨씬 강한 도움과 돌봄과 연대가 위축될까 두렵다. 그러니 신천지는 이단이고, 사랑제일교회는 그렇지 않다는 판단은 도대체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그리고 대다수의 인내와 질서를 무시하고 함부로 떼 지어 움직이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국가를 위기에 빠트리려는 반국가적 행위는 아닌지 묻고 싶다.

장마로 인한 수해와 코로나19의 확산은 두루 기후위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 근본 원인에 대해 충분하게 성찰하고 있는가. 너무 일찍 경제적 회복을 욕망하고 거기 휩쓸리고 있는 건 아닌가.

“다수는 착하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않으므로 친절보다는 엄격함에 의지해야 한다.” 중세 유럽의 역사가 프란체스코 구이차르디니의 말이 생각나는 2020년 여름은 아직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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