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장마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0.08.1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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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여름에 비가 오는 것이야 흔한 일이라서 대수롭다고 할 수 없겠지만, 비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면 사람들은 기분이 침울해지고 때로는 공포감을 느끼기도 한다. 비 때문에 생계를 위협받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세칭 팔자 좋은 사람도 비로 인한 스트레스를 피하기는 어렵다.

조선(朝鮮)의 시인 정약용(丁若鏞)도 예외는 아니었다.

장마(久雨)

窮居罕人事(궁거한인사) 외딴곳에 살다 보니 찾는 사람 볼일 거의 없어
恒日廢衣冠(항일폐의관) 평소에 의관을 접어두었네
敗屋香娘墜(패옥향낭추) 썩은 지붕에서는 노래기가 떨어지고
荒畦腐婢殘(황휴부비잔) 묵은 밭에는 팥꽃이 겨우 남아 있네
睡因多病減(수인다병감) 병이 많으니 잠마저 줄었고
愁賴著書寬(수뢰저서관) 글 짓는 일로 시름을 달래 보네
久雨何須苦(구우하수고) 오랜 비 때문에 어찌 괴로워만 할 것인가
晴時也自歎(청시야자탄) 갠 날에도 혼자서 탄식할 뿐인 것을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던가? 긴 비도 제대로 버텨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시인이 기거하는 곳은 외딴 마을이라서 사람들의 왕래가 뜸하다. 그래서 얽히고설킨 사람 사이의 일들도 거의 없는 편이다. 누구를 찾아갈 일도 없고 누구를 맞이할 일도 없으니 의관은 방 한구석에 모셔 두고만 있다. 낡은 집에 오래 내린 비로 지붕에서 노래기가 마치 비처럼 뚝뚝 떨어진다. 오랜 비로 묵혀 둔 밭에는 팥꽃만이 드문드문 애처롭게 남아 있다.

오랜 비를 못 견딘 것은 시인의 집과 밭만이 아니다. 시인 자신의 몸 마음도 못 견디긴 마찬가지였다. 평소 지병이 도져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던 것이다. 글 쓰는 일로 시름을 달랠 수 있으니 시인에게는 여간 다행히 아니다.

이 즈음에서 시인은 깨닫는다. 탄식은 긴 비가 아니더라도 늘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긴 비에 심신이 지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긴 비를 탓하고만 있어서는 될 일이 아니다. 글을 쓰거나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함으로써 기분 전환을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더불어 사람들의 근심은 비가 오나 해가 뜨나 늘 있게 마련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필요한데, 이로도 긴 비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으리라.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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