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공장 여공 땀·눈물 밴 산업불모지 `상전벽해'
생사공장 여공 땀·눈물 밴 산업불모지 `상전벽해'
  • 엄경철 기자
  • 승인 2020.08.13 2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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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농업 중심 1차산업 육성 … 생산물 日수출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세계경제 호황에 공업 성장
뗏목→ 철길·고속도로 교통발달 … 충북경제 영역 확장
양잠·연초공장, 반도체·바이오 최첨단산업으로 대체
KTX·청주국제공항 발판 전세계 산업 중심지 `비상'

 

충북의 근대산업은 양잠, 연초, 양곡 등 농업이 중심이었다. 청주근세 60년사화(1985년 청주시 발행)에 의하면 양잠강습소(1912년)와 연초전매국 청주출장소(1921년 4월), 미곡대두검사소(1922년, 양곡의 품질을 검사하는 곳), 농사시험장(1907년)를 설치할 정도로 지역의 근대산업은 농업 중심이었다. 1920년대 언론에 비춰진 충북경제 역시 농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청주지역 생사공장에서 생산된 생사가 일본으로 수출됐다. 이밖에 연초제조창, 정미업, 목재·제재업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충북은 농업 외에 제조업 등 다른 산업은 불모지에 가까웠다.

해방이후 6·25전쟁으로 모든 생활과 생산기반이 파괴됐으나 60년대 들어서면서 경제가 안정을 찾았다. 당시 정부의 경제개발계획과 세계 경제 호황이라는 훈풍을 타고 충북의 공업은 급성장한다. 하지만 1968년 세계적인 석유파동으로 지역경제가 침체에 빠졌으나 1970년 회복됐다. 이후 IMF이라는 경제위기를 거치기는 했지만 충북은 농업도에서 산업도로 성장했다.


- 충북경제 대동맥 교통-수로와 육로, 철도의 개통

충북의 근현대 경제사는 교통과 함께 발전했다. 충북의 교통로는 수로와 육로로 구분된다. 특히 수로는 철도가 들어오기전까지 충북의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금강의 뱃길은 발원지인 전북에서부터 충남을 거쳐 청주까지 연결됐다. 청주권에서는 내륙의 물자와 서남해안의 물자를 이동시키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내륙의 생산물자와 서남해안의 생산물자를 실어나르는 교통수단은 금강수로를 오갔다던 소금배였다.

남한강 수로는 충북 북부지역의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강원도 정선, 평창, 영월, 충북의 단양, 제천, 충주, 괴산, 경기도 여주, 이천, 양평 등을 거쳐 수도권을 잇는 수로였다. 교통수단은 돛단배와 뗏목이었다. 강원도와 충북 북부, 경기지역의 남한강 수계지역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육로도 충북을 관통하면서 지역상권을 형성했다. 단양 죽령, 충주 하늘재, 괴산 조령, 영동 추풍령 등은 수도권으로 가는 주요 길목이었다.

1905년 철도가 개설되고 이후 고속도로가 개통될때까지 육로와 수로 교통수단은 지역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친 후 산업발전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경부선과 충북선 철도, 경부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는 충북경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철도와 도로 건설은 충북의 산업화를 가속화시켜 농업지역을 공업지역으로 변모시켰다. 반면에 산업화로 인력을 빼앗긴 농촌지역은 인구가 감소되면서 공동화현상이 나타났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충북의 경제지형도 큰 변화를 맞았다. 농업 중심의 근대산업과 제조업 중심의 현대산업은 모두 노동력이 필요했다. 이는 농촌지역의 노동력이 도시로 이동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충북의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속화된 것 역시 교통의 발달이 큰 역할을 했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충북은 농업도시에서 IT, 바이오, 화장품, 신재생 에너지 등 최첨단산업이 지역경제를 이끄는 도시가 됐다.



- 생사(生絲)에서 반도체 수출

일제강점기 여공들이 수작업으로 생산한 생사(生絲)를 수출했던 충북경제는 100년 후인 지금 최첨단 반도체를 수출하고 있다. 최첨단산업이 주도하는 충북경제는 전국 경제 3%를 차지하고 있다. 이젠 4% 경제성장을 향해 가고 있다. 충북의 경제규모는 2018년 기준 GRDP는 65.8조원, 연수출액 221억불이라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최근까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충북경제는 그만큼 성장통도 겪었다. 일제강점기 생사공장의 어린 여공들이 파업을 할 정도로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생계유지를 위해 일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친후 노동집약형 산업이 충북경제 성장을 원동력이 됐다. 노동집약형 산업은 기술집약형으로 전환되면서 부가가치를 높였다. 노동시장환경도 급변했고 그만큼 노사갈등도 삼화됐다. 충북경제는 산업 뿐 아니라 유통, 건설,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장을 거듭했다. 성장과정에서 충북지역을 기반으로 경제활동을 했던 많은 기업들이 생겨났고, 일부 기업은 경영위기와 변하고 있는 시대흐름에 적응하지 못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 소금배·뗏목에서 KTX, 항공시대로

충북의 교통수단이었던 돛단배와 뗏목을 이젠 KTX와 비행기가 대신하고 있다. 시속 300㎞의 KTX는 청주에서 전국을 2시간안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청주국제공항에서는 국내와 국외노선은 운항하는 비행기가 세계화를 재촉하고 있다.

첨단화된 교통수단은 충북 경제를 바꾸어놓았다. 충북은 100년 전 농업 외에는 산업개념을 논할 수 없었던 불모지에서 반도체, 바이오 등 최첨단 산업 중심지가 됐다.

일제강점기 양잠, 연초, 양곡을 다뤘던 시설과 공장이 있던 곳에 최첨단산업시설이 들어서 지역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농업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충북은 반도체, 바이오 등의 최첨단 미래산업을 통해 100년 먹거리를 창출을 꿈꾸고 있다. 이젠 드론 등 항공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머지않은 시점엔 충북이 항공우주산업까지 산업영역을 확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의 충북경제가 있기까지 많은 시련과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충북경제가 100년의 세월 속에서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에 대한 족적을 되짚을 때가 됐다. 이에 각종 기록과 언론에 비춰진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이후부터 현재까지 100년의 충북경제 성장과정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시리즈를 시작한다. 향후 100년 미래먹거리 창출을 준비하기 위한 소중한 경험과 교훈을 얻기 위한 것이다.

/엄경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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