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
별똥별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0.08.1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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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이창옥 수필가

 

칠흑 같은 어둠이 이런 풍경인가 보다. 언덕 아래 무논에서 개구리들의 개굴거리는 소리와 풀숲에서 풀벌레들의 찌르르 또르르 거리는 불협화음 합창이 고요한 적막을 깨트린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도시에서 바라보던 하늘과는 사뭇 다르다. 도시에선 희미한 별빛이 이곳 하늘에서는 초롱초롱하다. 금방이라도 별들이 무리지어 내려와 지상의 소리에 천상의 소리를 더할 듯싶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시골의 밤 풍경에 넋을 놓고 바라보다 마당 끝자락 석양바위에 앉아 숨을 고른다. 잠시 후 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똥별 하나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별똥별은 나를 옛날 고향 앞마당으로 옮겨 놓았다. 별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여름밤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밤이면 불빛 한 조각도 귀했던 시골동네였다. 그 어둠을 밝히던 유일한 빛은 호롱불과 마당 한 귀퉁이 모깃불이었다. 해지기 전 저녁밥을 먹고 나면 엄마는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그 옆에 멍석을 펼쳐 놓았다. 꺼끌꺼끌한 멍석은 나의 놀이터가 되었다. 뒹굴뒹굴하면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귀동냥하기도 하고 하늘의 별을 손가락으로 세며 놀았다. 어쩌다 긴 꼬리를 늘이며 떨어지던 별똥별을 볼 때면 별똥별이 어디로 떨어질지 너무도 궁금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이 냇가 깨끗한 모래밭이라고들 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며 쫄깃한 게 끝내주게 맛있다며 큰소리로 웃었다.

나는 별똥별이 어떤 맛일지 정말 궁금했다. 운 좋게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보게 되면 다음날 나는 슬그머니 냇가로 나가 모래밭을 샅샅이 살폈다. 그러나 어른들이 말하는 끝내주게 맛있다는 별똥별은 그 어디에서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대신 운 좋게 물새들의 둥지에서 조약돌만 한 알들을 발견할 때가 있었다. 혹시 별똥별이 변신한 것은 아닐까 이리저리 살피다가 어미 새들만 몸 달게 했던 일이 꽤 여러 번이었다. 어른들의 말대로 별똥별은 깨끗한 냇가 모래밭에 내려와 마음 착한 사람만 기다리는 게 확실했다.

이미 나는 착한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냇가에 수영하러 놀러 갈 때 남의 밭에서 슬쩍 참외나 토마토 한 개씩 서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참외를 물 위에 띄워 놓고 놀다가 출출할 때 먹으면 꿀맛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름 내내 멍석에 누워 별똥별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내가 하늘을 매일 바라보며 상상하며 즐거워할 수 있게 된 것도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 이후로도 난 단 한 번도 그 맛있다는 별똥별을 찾아내지 못하고 어느새 예순을 바라보는 어른이 되었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사는 게 고만고만했던 시절이었다. 먹거리도 귀했던 때였다. 아이들에게 선한 마음도 함께 심어주고 싶은 어른들의 바람이 별똥별을 착한 사람만 찾아 먹을 수 있는 먹거리로 희화시켰을 것이다. 별똥별 덕분에 어린 시절을 잠시 돌아보니 무지했지만 마냥 순수했던 그때가 아련하다. 얄팍한 배움으로 별똥별의 실체를 알았음에도 하늘을 바라보며 별똥별이 떨어지기를 기다렸고 예순을 바라보는 지금 석양바위에서 별을 헤아리며 여전히 별똥별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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