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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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종극 기자
  • 승인 2007.05.28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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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머슴의 행복한 희망
문 종 극 <편집부국장>

꿈이 많았던 내 나이 스무살쯤인 것 같다. 그러니까 28년여전 우리동네에 나보다 너댓살정도 더 나이를 먹은 '봉필'이가 있었다. 나이는 연배였지만 많은 것을 나에게 물어보기를 좋아하는 탓에 우린 친구처럼 지냈던 것 같다.

그 시절 우린 서로 미래에 이루고자 하는 꿈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한겨울 오전 한나절 집안 일을 도운 후 점심을 먹고 그 포만감을 양지바른 곳에서 즐기면서 나눈 대화였다

정치인, 선생님, 언론인 등 무척이나 하고싶은 것이 많았던 탓에 자연히 꿈도 다양했던 나에 비해 그 친구는 이루고자 하는 꿈이 오로지 하나였다. "난 하꼬방 하나를 마련해서 마누라와 자식을 셋정도만 나아 함께 살아가는게 꿈이며, 그 인생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렇게 남의 집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봉필'이는 구멍가게를 하면서 일가를 이루는게 인생의 목표며, 유일한 꿈이라는 것이다.

그 친구가 그 꿈을 이뤘다면 지금쯤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권력과 명예와 경제적 여유로움보다도 정신적 여유로움이 더 큰 행복을 가져준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알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는 그의 꿈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당시 '봉필'이의 직업은 사전적 의미로 농가에 고용돼 농사뿐만 아니라 주인집 가사노동까지 담당하는 농촌 노동자다. 즉 머슴이다.

머슴이란 고려시대에는 용작(傭作), 조선시대에는 고공(雇工)이라 불렸으며, 주인집에 기거하면서 의·식·주 등을 제공받으며, 일정한 사경(私耕)을 받는다. 봉건적 농노(農奴)나 노예와는 엄격히 구별되는 존재며, 농번기때 일시적으로 일하는 일꾼도 아니고 하인과도 구별된다. 머슴은 마을에서 평가되는 노동능력에 따라 상머슴과 중머슴, 그리고 새끼머슴(꼴담살이)으로 불리는 소년머슴이 있다.

이중 상머슴과 중머슴은 일정한 사경을 받는다. 새끼머슴은 사경 없이 의식주만을 제공받는다. 그래도 새끼머슴은 희망을 갖고 살았다.

상머슴이 독립하면 중머슴으로, 이어 상머슴을 거쳐 자신의 전답을 마련해 독립해 일가를 이룰수 있기 때문이며, 주인이 새끼머슴이 중머슴으로, 중머슴이 상머슴으로 승진할시기에 사경을 덜주기 위해 내보내는 즉 해고하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새끼머슴은 지금의 비정규직으로 볼 수 있다.

나의 어릴적 연상의 친구 '봉필'이가 쌀 12가마를 연봉(사경)으로 받는 상머슴인 정규직이라면 의식주만 해결할 뿐 연봉이 없는데다(연봉이 없다는 것은 고용기간이 불분명한다는 것) 언제 주인에게 쫓겨날지 모르는 새끼머슴은 비정규직에 해당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고 만든 법이 오히려 비정규직 해고를 합법화하고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법이라며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있는 비정규직 관련법이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이 법 시행이 임박하면서 일부사업장에서는 벌써부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피하기 위해 0개월, 3개월, 6개월 계약이라는 신종 계약서가 등장하고 해고사태가 이어지기도 한다. 또 사용자 단체는 이번에 본격 시행되는 비정규직법 활용()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지 사용자들에게 안내하기도 하는 등 노동자들이 결코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악법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마저도 법 취지가 무색해지는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다. 내 친구 '봉필'이가 소박한 꿈을 이루고, 새끼머슴이 열심히 일한다면 상머슴이 되는데는 문제가 없다는 희망을 가지는 것처럼 870만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하면서 때가 되면 당연히 정규직이 된다는 희망을 품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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