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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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진희 기자
  • 승인 2020.08.09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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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중국의 석가가 인도와 다르며, 일본의 공자가 중국과 다르며, 마르크스도 카우츠키의 마르크스와 레닌의 마르크스와 중국이나 일본의 마르크스가 다 다름이다.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利害) 이외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哭)하려 한다”(낭객의 신년만필/신채호)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책을 사게 되면 속지 첫 장에 책을 산 시간과 공간, 그리고 간단한 메모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황석영의 소설 `손님'을 책장에서 꺼내 펼치니 `초대하지 않은 손님,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란 메모가 삐뚤삐뚤한 글씨로 적혀 있다.

그런데 책을 산 서점과 날짜는 적혀 있지 않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 여백은 작가가 선물한 우리의 생채기였다. 해방의 기쁨과 함께 찾아온 극심한 이념대립의 공간에서 우리끼리 서로 죽고 죽이며 철천지원수로 살아온, 그 상처와 원한을 치유받지도, 극복하지도 못한 채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버텨온 우리 민족의 역사였다.

“황해도 신천에는 `미제 양민학살 기념관'이 있고 군(郡) 전역에 걸쳐서 학살장소를 보존하고 있어서 더욱 어두웠습니다.

안내원이 격앙된 어조로 전쟁시기의 미군의 만행에 대하여 치를 떨며 설명하고 그 물적 증거물들을 보여주는 식이었지요.(중략)

망명지를 뉴욕으로 옮긴 뒤에 통일운동 활동으로 알게 된 신천 출신 어느 목사에게서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실은 그 끔찍한 학살이 `우리들끼리' 이루어졌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내면적인 죄의식과 두려움이 지금도 그치지 않는 광적인 증오의 뿌리가 되었던 셈입니다.

`손님'은 한국전쟁시기 서로 죽고 죽이던 저러한 악몽의 45일을 몽환적으로 드러내는 한판의 해원(解怨)굿입니다”(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도 밝혔듯이 이 작품에서 `손님'이란 주체적 근대화에 실패한 우리에게 외부에서 이식된 `기독교'와 `맑스주의'를 가리킨다.

작가는 1950년 황해도 신천 대학살사건을 배경으로 이 땅에 들어와 엄청난 민중의 희생을 강요하고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긴 이 두 가지 이데올로기와 그 소용돌이에 휩쓸렸던 인간군상들의 원한과 해원을 그려내고 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동서냉전체제가 해체되었지만 한반도는 아직도 주인이 손님의 대리전을 치르고 있고, 한반도의 반쪽짜리 섬이 되어 버린 이 땅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옷으로 갈아입은 손님의 그림자가 주인을 그 갈등의 전선으로 동원하며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

건전한 토론 문화의 부재, 사회 갈등의 비민주적 양태 그리고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민주주의의 합리성을 퇴행시켜 선진 사회로의 도약을 방해하고 사회적 통합을 저해하고 있다.

해방 75주년을 맞아 작가의 말처럼 아직도 한반도에 남아 있는 전쟁의 상흔과 냉전의 유령들을 이 한판굿으로 잠재우고 한반도에 화해와 상생의 새 세기가 열려 나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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