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지혜를 담은 가마터(窯址)
생활의 지혜를 담은 가마터(窯址)
  •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20.08.09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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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가마터(窯址)는 여러 용도의 토기·도기·자기·벽돌·기와 등을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었던 자리로 지금은 폐허가 된 곳을 가리킨다. 이밖에 숯을 생산하기 위한 시설물인 숯가마[木炭窯], 석회생산 시설물인 석회가마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가마는 땔감을 때는 방[燃燒室]과 생산품을 쌓는 방[燒成室], 연기가 빠져나가는 굴뚝[排煙部]으로 나뉘고, 생산품을 쌓는 방은 열 보존을 위해 밀폐되도록 축조한 시설물이다. 한데시설인 노천요(天窯)에서 시작한 가마는 열 효율성을 높이려고 지하식·반지하식·지상식 가마구조로 발전하였다. 흙으로 쌓고 높은 열을 반복적으로 받은 가마는 훼손되어 그 기능을 잃는다. 폐허가 된 옛 가마 자리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주변에 가마벽 조각, 깨진 생산물 조각, 도구들이 흩어져 있을 뿐이다.

이들 가마터는 시대별로 우리 선조가 삶에서 필요한 생활의 지혜를 담은 물품을 생산하던 곳으로 많은 학술정보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가마터가 자리한 입지환경으로 쉽게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필자는 1991년 충청북도에 우리 지역에서 사라져갈 문화유산 중 가마터, 금석문, 현판에 대한 현황파악 및 성격규명을 위한 기초조사의 필요성을 제안하였다. 그 중 가마터 조사가 정책에 반영되어 충북지방 도요지(陶窯址)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가 1992~1993년 이루어졌다. 그 결과 토기 가마터 20개소, 청자 가마터 1개소, 분청사기 가마터 19개소, 백자 가마터 89개소, 기와 가마터 1개소 등 130개소의 가마터가 분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특정분야에 대한 학술조사로서는 처음이다.

1424~1432년 사이의 조사 내용이 기록된 `세종실록'지리지에 괴산군, 진천군, 옥천군, 영동군에 자기소(磁器所), 도기소(陶器所)의 존재가 기록되어 있음은 이곳에서 도자기를 생산하여 중앙에 토산 공물로 바쳤음을 의미한다. 이들 가마터가 지표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것이다. 특히 영동군 추풍령면 사부리 분청사기 가마터에서 수습한 덕령(德)명 대접편이 주목된다. 이는 1455~1457년에 존속했던 단종의 상왕부인 덕령부(德府)에 분청사기를 상납하였던 가마였음을 알려준다. 또한 이때에 생산활동을 하였던 가마임을 알 수 있어 우리나라 분청사기 연구에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작은 도자기편 한점이 주는 의미는 크다.

토기 가마터로 괴산 수암리의 통일신라 토기 가마터는 전국적으로도 몇 예밖에 없어 이 시기의 토기가마로서 중요한 학술가치를 지닌다. 지표수습한 도자기편으로 볼 때 충북에서 분청사기는 괴산 사시막리를 중심으로 15세기 전반에 활발한 생산활동이 이루어졌고, 백자는 17~19세기에 생산된 것이 대부분이다. 이 시기는 실학이라 개념 짓는 신사조의 문예부흥기였으며, 일반 문화현상에서와같이 자기 생산에서도 변화가 일어난 때이다. 국민의 의식이 달라지고 사회적 요구가 실사구시(實事求是)였기 때문에 이 시기에 백자 생산이 급속히 증가한 것은 이러한 신사조 영향의 결과로 보인다. 17세기 이후 도자기 생산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데 충북지방도 예외는 아니었음이 각지에 분포된 가마터가 말해준다. 도자기 생산의 급속한 지방 확산은 도자기의 양식적인 특징인 기형, 무늬, 굽 처리, 제작기법 등에서 지방백자의 특징들이 반영되어 나타난다. 이 시기에 생산된 도자기의 종류도 일상생활용기인 접시나 대접이 주종을 이룬다.

비록 지표조사라는 한계는 있으나 흙으로 빚어 구운 아름다운 조형물이며, 선조의 생활의 지혜를 담은 충북지방 도자문화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기초자료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30년 전 척박한 충북의 조사 연구환경에서 이뤄낸 결과이다. 다른 분야에서도 사라져가는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고 자료가 축적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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