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통 속의 청약서
휴지통 속의 청약서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0.08.0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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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사무실에 있으려니 귀가 따가웠다. 아까부터 누군가 전화를 붙잡고 고객과 상담을 하는건지 다툼을 하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얼마 후 갑자기 그가 큰 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청약서를 구기더니 휴지통에 던져 버리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성만은 그가 왜 그렇게 고객과 다퉜는지 의문이 발동하면서 그가 버린 휴지통 속에 구겨진 보험 청약서를 펴 보았다. 자신이라면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성만은 구겨진 청약서의 고객과 상담을 하고 싶은 호기심이 생겨났다. 곧바로 성만은 그의 뒤를 쫓아가 그가 버린 고객과 상담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아마도 성만에게 그것은 마땅히 지켜야 할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성만은 고객에게 전화로 상담을 청하였다.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헛수고를 거듭하다가 점심때가 되었다.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할 때 그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혹시 모를 성과라도 기대보려고 눈 돌릴 겨를이 없다는 심정이었다.

성만이 보험설계사로 발을 들여 놓은 지 몇 달이 지났다. 그런데 그의 실적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그 정도로 무능한 탓인지 운이 없던 탓인지 그 까닭을 알 수 없는 것 같았다. 그가 보험회사에 근무하기 전에 그는 군에서 하사관으로서 나름대로 인정받는 군인이었다. 그때 그는 늘 무엇을 해도 자신 있다고 자부했었다. 그랬던 그가 전역 후 잠시 일자리를 찾아 전전긍긍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30대가 다 되어 보험설계사의 하루가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세상은 그리 쉽게 가까이하기엔 멀고도 어려운 일들과 부딪쳐야만 했다. 매일 아침 출근을 했지만 집으로 돌아갈 땐 늘 빈손이었다. 성만은 차라리 그곳을 떠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어떻게 점심을 먹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성만은 다시금 전화를 들었다. 역시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 왠지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부터 자신의 고객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집착할 줄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거는 일은 지칠 줄 모르고 거듭되었다.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통화가 연결되었다. 고객은 거친 말투로 상담을 원하지 않는다는 듯 전화를 끊어 버렸다.

성만은 감정이 상했지만 어떻게 걸린 전화인데 아무렇지 않은 듯 허투루 끝날 수가 없었다. 끈질긴 사정 끝에 다시금 고객과 통화가 되었다. 성만은 고객의 거친 감정을 달래가며 그를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도저히 상담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고객이 문을 열기 시작했고 상담은 미소를 끌고 이어져 갔다. 그리고 그에게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 마침내 계약을 성사시켰다. 성만에게 더 없이 소중한 첫 계약의 일자리 성과였다. 첫발을 내딛는 순간 성만은 천리길도 정상도 한 달음에 달려갈 것 같았다.

세상은 빠르게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 그들 속에 일자리 또한 수없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물론 많은 것이 있겠지만 그것은 바로 일자리에 임하는 자세이다. 얼마나 투철한 직업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 할 것인가 하는 가치관이다. 모든 것이 그러하겠지만 어떻게 그 일에 임하느냐에 따라 성패와 의미가 부여되어져 왔다. 시대가 뒤바뀌고 현실이 달라도 삶 속에서 일자리를 대하는 의식만큼은 아직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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