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과 매몰 4
발굴과 매몰 4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0.08.0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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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올 장마는 유난히도 길다. 여느 해 같으면 벌써 장마가 지나갔고 여름휴가가 피크일 때다. 장마가 길기도 했지만, 집중호우로 피해 또한 엄청났다. 우리 농장이라고 재난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축대는 무너지고 산사태로 샘이 묻혔는가 하면 길은 유실되었으며 수마가 땅콩 밭이며 고추밭을 휩쓸었다. 화재로 인한 재해는 건질 것이라도 있다지만 수해를 당하면 남는 게 없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쓰러진 농작물을 일으켜 세우고 쌓인 복토를 파내느라 연일 비지땀을 흘렸다. 힘겹게 복구시켜 놓으면 또 쏟아져 내려 유실되고 묻히기를 몇 번이나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던가? 매몰된 샘을 파보면 온전히 있었다. 고무다라 뚜껑을 덮어 놓은 덕분이다. 샘은 메이고 나면 발굴해 복구한다 해도 완전할 수가 없다.
쓰러진 농작물은 바로 세워줘야 하고 병해가 닥치므로 속히 방제작업을 해야 한다는 큰형님의 말씀에 새벽 4시에 나가 고추밭 소독을 했다. 8시까지 4시간을 탄저병과 무름병 소독했으나 밭 전체 중 절반밖에는 칠 수가 없었다. 배도 고팠거니와 손녀 어린이집 등원을 시켜야 했다. 다시 방제 작업을 시작한 것은 10시가 다되어서였다. 그런데 이럴 수가.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농약병을 보는 순간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하늘이 노랬다. 전착제. 약효가 오래갈 수 있도록 농약과 함께 쓰는 제품이다. 그런데 그 전착제는 없고 제초제가 탄저병, 무름병 약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닌가? 제초제는 풀을 죽이는 약이다. 물론 농작물도 예외는 아니다.
이웃 아저씨가 생각난다. 아저씨는 참으로 성실하고 마음씨 고운 전형적인 시골 농사꾼이셨다. 녹음방초 우거진 바로 이때쯤의 계절이다. 밭에 잡초 또한 극성을 부릴 때다. 농작물보다 잡초가 무성한 밭에 제초제 살포작업을 했다. 더위가 최고조로 달한 이때다. 땀으로 범벅이 된 지친 몸을 나무그늘로 피신시키고 막걸리로 목을 축이려 했다. 주전자에 술을 담아 왔지만, 잔까지는 챙겨오지 않았었다. 주전자 주둥이로 마시기는 그렇고 이리저리 따라 마실 그릇을 찾다가 옆에 있던 사발을 발견하고 사발에 따라 마셨다. 그런데…. 아뿔싸, 그 대접은 제초제를 따라 분무기에 넣던 약사발이었던 것이다. 아저씨는 그 뒤 시름시름 앓으시다 끝내는 돌아가시고 말았으니 제초제의 약성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만하다.
전착제와 제초제의 병 모양과 겉 인쇄 색상이 엇비슷했다. 쓰여 있는 글씨를 확인하지 않으면 지금도 실수할 것 같다. 다급한 마음에 미명인 새벽 4시에 부지런 떨다가 저질러버린 돌이킬 수 없는 대실수. 그렇잖아도 장마에 쓰러진 고추가 온전치 못할진대 제초제를 뿌려 놨으니 엎친 데 덮친 꼴이 된 엄청난 실수를 자행하고 말았으니 이를 어찌할꼬….
수해복구 작업으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낼 때쯤. 참외 순자르는 시기를 놓쳤다. 참외는 원줄기를 2~3가지를 남겨놓고 잘라야 한다. 즉, 나 본줄기는 아들가지를 위하여 죽어야 한다. 그래야만 2~3아들가지가 무럭무럭 잘 자란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아들가지는 또 8~9마디에서 잘라야 한다. 그 8~9마디에서는 손자가지가 나오는데 손자가지에서 참외가 맺히는 것이다. 나도 아니고 아들도 아니고 3세인 손자줄기에서 비로소 결실을 본다니 참 흥미로운 농사일도 다 있구나 싶다.
장마 기간 동안 복구작업을 하면서도 돌탑 쌓는 일 또한 분주했다. 산사태가 난 자리며 비로 씻겨진 곳에 보이지 않던 돌들이 돌출된다. 탑의 주 재료가 되는 그 돌들이 내 눈에는 보석처럼 보였다. 손자 증손자 그 이후에 더 빛날 멋진 돌탑이 되리란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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