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 욕이 탄생하기까지
한마디 욕이 탄생하기까지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0.08.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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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말 한마디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능력은 정말 놀랍다. 사람을 보고 한마디 말이 발설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자.

1. 사람을 본다. 보는 작용에는 고도의 사양을 가진 탐지 장치(눈)가 동원된다. 시각신호인 광파(光波)가 대상으로부터 각막에 도달한다. 각막을 포함하고 있는 수정체가 광파를 길이, 넓이, 두께, 상하, 좌우, 거리, 높이, 선의 형태, 색과 같은 다양한 신호로 분해한다. 이렇게 분해한 물리적 신호들을 시신경이 전기에너지로 전환한다. 여기까지가 보는 작용이다.

2. 대상을 파악한다(identify). 시각을 통해서 산출된 전기에너지는 신경세포(neuron)들을 통해서 뇌에 전달된다. 뇌에 전달된 후 특정의 개념으로 전환되기까지의 과정은 오리무중이다. 뇌과학자들은 전기신호가 두뇌에 전달된 이후 개념을 산출하는 과정을 블랙박스라고 부른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는 말이다. 어쨌든 신비한 과정을 거쳐서 개념을 산출하면 대상을 파악하는(identify) 과정이 완료된다. 어떤 사람에 대해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차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인 신호가 정신적인 내용으로 전환이 된다. 어떻게 그렇게 되지? 두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만을 말할 수 있을 뿐 그 과정이나 방식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3. 판단한다. 개념적 규명 작업이 끝나면 인간은 그에 대해 시비, 선악, 호오, 미추의 기준으로 그 사람을 판단한다. 좋아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맞는지 틀리는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잘생겼는지 못 생겼는지 등을 판단하여 시비의 범주, 가치의 범주 등에 귀속시킨다. 그리고 그에 대해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고른다. 인간성이 보잘 것 없고 인간 구실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들면 욕을 고르고(예를 들어 `개새끼'같은) 발설하는 과정을 밟는다.

4. 발성기관에서 조음(調音, articulate) 과정을 밟는다. 두뇌에서는 `개새끼'라는 욕을 하라는 신호를 발음기관에 전달한다. 그러면 폐에서 공기를 뱉어내고(이때 뱉어낸 공기를 목소리라고 한다.), 뱉어낸 공기를 혀와 입술, 치아로 잘 조절해서 음을 만들어낸다. `개'의 예를 들면 ㄱ은 어금니 위치에서 소리를 내게 되고 ㅐ는 혀를 조절해 구강과 성도의 비율을 맞춰 분절음을 생산 조합한(ㅣ+·+ㅣ) 후 다시 ㄱ과 합쳐서 `개'를 발설하게 된다.

`개새끼'라는 욕이 산출되기까지는 이렇게 고도로 전문적이고 세련된 생명 장치들이 동원된다.

발설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상대에게 `개새끼!'라고 욕을 하면 싸움이 벌어진다. 한마디 욕이 산출되기까지의 전문적이고 고급스러운 기술들이 사용된다는 걸 알고 나면 욕을 하면서 싸움을 벌이는 건 어마어마하게 고급스럽고 값비싼 장치를 참 싸게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된다. 욕을 하면서 싸움질을 하는 건 값싼 처신이다.

이 대목에서 `그러면 값싸지 않은 처신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경쟁? 이건 아니다. 건강한 삶을 위한 노력? 그저 건강하기만 해서 뭐할까? 입신출세? 글쎄? 엄청난 가치를 지닌 생명장치를 이용해서 자신의 입신출세를 목표로 삼는 것도 가치상으로 균형 잡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랑? 또 다른 생명을 산출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본다면 어느 정도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나는 나의 생명장치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건가? 이런 의문을 던지면 사랑도 답은 아니다. 더 이상 사랑에 목을 맬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어떤 말이나 행위를 대입시켜도 인간이 구비하고 있는 생명장치만큼의 가치에 견줄 만한 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한 가지를 찾는다면? 인간의 생명장치를 작동하지 않게끔 하는 일 정도가 최선이 아닐까 싶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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