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8월,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8.04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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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다시 `집'이 혼란스럽다. 아니, 궁극적으로는 결국 `돈'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흔들어대고 있는 것이다.

전세가 사라질 것이고, 집 없는 서민들은 월세의 수렁에 빠질 것이며 급기야 살집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야 하는 시련을 겪을 것이라는 엄포가 극성스럽다. (나는 `살집'이라는 표현을 몹시 망설였다. `집'이 불로소득의 신화로 여전히 굳건한 상태에서 `살집'을 Buy가 아닌 Live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기우한다.)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고, 그 누구도 제대로 깨달으려 하지 않았지만, 전세제도는 전 세계에서 거의 대한민국에서만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상한 제도다. 가난한 사람이 잉여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상대적 부자에게 목돈을 주고 삶의 보금자리를 빌려 임시로 살아가는 것이다. 가난하여 `집'없는 실수요자가 자기보다 더 돈이 많고, 더 큰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혈안이 된 투자자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역행'을 그동안 한국 사회가 만연하게 방치해 왔던 것이다.

거기에는 (전세)보증금을 유지하면서 근검절약을 통해 어떻게든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애틋한 소유 의지도 있지만, 가난한 이들의 피눈물 나는 자금을 통해 더 큰 부를 축적하려는 자본의 탐욕이 더 크다.

공급을 통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고집은 집을 거주가 아닌 소유의 욕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후손들에게 공공의 공간을 빼앗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주택 공급을 위한 택지 후보로 확실하게 거론되는 태릉 골프장은 원래 녹색공간으로 지키려 했던 그린벨트 지역이다. 주택보급률이 104%로 집계될 만큼 집은 모자라지 않는다. 공급을 늘릴수록 돈이 더 많은 부자들에게 `집'은 `물건'이 될 것이고 부동산 정책은 시장경제에 휘둘리게 된다. `집'이 가난한 실수요자의 희망인 `Home'에서 점점 멀어져 `House`가 되어 투기의 먹잇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 헌법 제121조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담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제헌헌법부터 명시된 이 원칙으로 지주-소작제가 혁파됨으로써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발판이 마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농사를 짓는 사람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이토록 소중한 원칙은 지금도 그럭저럭 유지는 되고 있다. 그런데 어쩌다가 `주택'은 이런 원칙에서 벗어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게 되었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집'은 소유가 아닌 철저하게 주거의 목적이 되어야 하며, 시장의 원리가 아니라 삶의 가치와 주거복지의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집'은 공공재로서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하며 탐욕적 자본 증식의 수단으로 삼을 경우 엄격한 과세를 통해 오히려 손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혁명적 전환이 필요하다.

K-방역이라는 자긍심을 갖게 될 만큼 코로나19에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은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지킨 국민의 헌신적인 참여가 밑바탕이 됐다. 그런 국민의 참여는 정은경 본부장으로 상징되는 질병관리본부의 일일보고로 국민의 절대적인 믿음이 만들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국토부도 질본처럼 국민을 향한 일일보고를 하는 혁명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매일의 부동산 거래 현황과 전·월세 매물, 부동산 거래에 따라 부과되는 세금과 주택공급 및 빈집 현황 등을 국민에게 보고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불어 `집'을 소유하지 않고 거주의 용도로 삼겠다는 국민에 대한 과감한 혜택과 지원 또한 부동산 불패의 헛된 꿈을 깨뜨리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8월이다. 광복의 8월은 우리에게 다시 일어서는 부활의 계절로 상징된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여전히 분노하는 것은 침략과 만행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는 비양심과 파렴치함에서 비롯된다. 일제 강제동원 기업의 국내 자산 압류 명령의 효력이 어제(4일) 자정을 기해 발생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 또한 지난 박근혜정권의 졸속 밀실 거래를 통한 10억엔의 상처로 남아 있다.

사람 사는데 돈이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집'도 한일관계도 사람에 대한 신뢰와 편안함을 근본으로 다시 시작해야 하는 8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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