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전시관에서
노을전시관에서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0.08.04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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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생소한 이름이었다. 노을을 어떤 방법으로 가두어 두었을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전시관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벽면마다 가득 메워진 노을빛 사진들이 연신 감탄사를 쏟게 할 뿐이었다. 극치를 넘어서서 신비로움을 솟게 하는 마당으로 보였다. 걸음은 더디어졌다. 날마다 마주하는 빛에 대해서 그동안은 왜 이런 기분에 몰입하지 못했을까. 그저 해가 뜨고 질 때 퍼지는 빛의 잔치쯤으로 생각했던 걸까.

수없는 세월 전의 저녁노을은 내게 있어서 우울한 샘과도 같았다. 겉으로는 찬란해도 그 너머에서 알 수 없는 어둠이 가득 몰려오는 듯했다. 감당해야 할 삶의 허기 같은 느낌이었다.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멀어지고 싶은 현실 탈피의 늪에서 허덕였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한다. 그럴수록 몸부림치듯 새날을 기다리는 일에 젖어 들어가고는 했다. 착시현상만큼이나 그 끝 어디쯤에는 나를 위로해 줄 어떤 기운이 있을 것 같은 막연함에 시달려 왔다.

전시관에서 담아온 중요한 두 가지를 기억한다. 빛의 굴절과 반사이다. 빛은 통과하는 물질과 파장에 따라 속도와 변화가 다르다고 했다. 빛이 공기에서 물로 들어갔을 때와 유리관을 통해 들여다볼 때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언젠가는 그것을 학습적으로 받아들였었지만 이제 와 보니 인간관계의 한 면과 흡사한 기분이 든다. 조금 더디 이해하고 좁은 폭으로 생각하게 되는 오묘한 심리상태를 들 수가 있다. 가끔씩 굴절이 되어 나타나는 내 마음을 보는 듯하다.

가장 눈길을 당긴 내용은 빛의 반사였다. 직진한다는 성질이 있다기에 흥미가 더했다. 부딪히는 면의 종류마다 반사의 폭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생활 속에서 흔히 접해 오지 않았던가. 사람사이의 교류도 그렇다. 빛이 매끄러운 거울이나 수면에 닿으면 환하고 투명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터이다. 한편 표면이 고르지 못한 사물에서는 난반사亂反射 된다고 하니, 서로의 소통에서 전달되며 느끼는 과정이 약간은 복잡하게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내 삶의 빛도 어느덧 저녁노을과 같이 되고 있다. 저물고 있는 심신을 바라보며 한 편의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태양이 만들어서 그득히 시야에 담아주는 노을, 이보다 더 정적인 선물은 없으리라. 그 앞에 서면 숙연함은 깊어져 간다. 전에는 그 빛에 취해 희뿌연 슬픔을 퍼 올리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름대로의 여유에 몰입하여 살아 있다는 기쁨을 찾기에 이르렀다. 낮 동안 쌓인 두꺼운 공기지면을 태양이 뚫고 나오면서 빚어낸 아름다운 붉은색에 마냥 취하기 바쁘다.

그날따라 간간이 내리는 비와 함께 우중충한 하늘이었다. 그러나 실내에 전시된 노을빛들은 기이한 생명력으로 환하게 지금껏 내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침을 알리는 찰나의 노을과 함께 꺼지지 않고 영원하기를 바라는 황홀한 저녁노을, 어느 것 하나 내려놓기 싫은 형상이 되어 마음을 물들여 놓았다. 광활한 대기의 선물인 노을빛을 이리도 무한히 누리며 산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하다.

문득 어느 영화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라는 명대사가 떠오른다. 그만큼 빛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존재감을 부여하고 있었다. 생명을 이어가는 희망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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