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 아트 빌리지
이원 아트 빌리지
  • 공진희 기자
  • 승인 2020.08.02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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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공진희 부장(진천주재)
공진희 부장(진천주재)

 

`앞에서 보면 산줄기 옆에서 보면 봉우리(橫看成嶺側成峰), 멀리서 가까이서 높은 데서 낮은 데서 그 모습 제각각일세(遠近高低各不同).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함은(不識廬山眞面目), 이 몸이 산속에만 있기 때문이네(只緣身在此山中)'

당송 8대가의 한 사람인 북송시대 시인 동파 소식이 지은 `제서림벽(題西林壁)'의 한 구절이다.

이 시는 여산을 벗어나 더 많은 감성으로 관찰하고 더 냉철한 이성으로 파악할 때 비로소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현실세계의 어떤 현상을 파악할 때 자기의 견해가 자기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지난해 여름 한 단체의 이원 아트 빌리지 견학 프로그램에 동행했다.

그런데 빌리지라고?

순간 동네 구멍가게를 슈퍼마켓으로 부르는 언어의 과대과장을 떠올리며 카페 앞에 좀 넓은 정원이 갖춰진 작은 미술관에 붙여진 빌리지라는 명칭이 내심 달갑지 않았다.

63빌딩을 설계한 건축가의 안내를 받으며 건축과 예술이 제대로 빚어낸, 여산에 견줄 만한 우리 지역의 명소라는 강한 인상을 받기 전까지는.

야외전시장 한 켠에서 비를 맞고 있는 조각상을 곁눈질하며 비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던 그때, 빗소리를 뚫고 주인장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 조각상이 대통령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비를 피해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관람객들이 조각상 주위로 몰려들었다.

곁눈질을 버텨 내던 그 작품이 위대한 건축가의 해설을 등에 업자 빗줄기 속에서 광채를 내뿜기 시작했다.

관람객들의 눈빛도 덩달아 반짝였다. 이곳은 내로라하는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소장된 귀한 공간이다.

이제는 귀호강 차례. 가치를 가늠하기 어려운 오디오와 스피커, 포장도 뜯지 않은 희귀 소장용 명반이 빼곡하게 들어찬 오디오실.

그곳에서 감상한 `매기의 추억'은 콘서트 현장에서는 느낄 수 없던 또 다른 감흥을 안겨 주었다.

건축가 원대연 교수는 98년 진천 이월 미잠에 터를 잡고 6년에 걸쳐 아트 빌리지를 조성했다.

그는 롯데호텔, 롯데월드, 압구정 현대백화점, 63시티 등을 설계한 건축가이며 사진작가 이숙경씨가 그의 아내이다.

원 교수는 (주)플러스 건축을 설립했고 건축전문지 월간플러스를 창간했으며 `여행넘어서기'라는 책을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아트빌리지는 건축물과 숲이 절반씩을 차지하는 약 1만평 규모에 상촌미술관 등 7개 전시관과 함께 세미나실, 음악감상실, 커피숍, 아트숍 등의 편의시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2005년에는 한국건축가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건축상을 수상했다.

2003년 자연과 어우러진 건축과 그림, 공예 작품 등을 전시하는 문화예술공간으로 탄생했으나 2012년 경영난으로 폐관, 보존가치가 높은 작품, 소나무, 건축물 등이 방치된 상태다.

“아트 빌리지 너무 아깝지 않아?” 지인이 던진 한마디에 지난여름의 감동이 되살아나며 `여산'이 섬광처럼 머리를 스쳤다. 그날의 여산은 그 철학적 해석에 앞서 아트빌리지의 감흥과 가치를 맛보았음에도 그것을 이웃과 나누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는 내게 소동파가 던지는 따가운 비판으로 다가왔다.

현대 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대가의 마무리 말이 아직도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이태리 국부의 1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과 숨결을 느끼려는 관광객들이 이태리 경제의 10%를 떠받치고 있는 셈이죠. 이것이 바로 문화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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