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장관 일감 몰아주기
법무장관 일감 몰아주기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0.08.02 19: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임명 35일 만에 사퇴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단명 장관에 꼽힌다. 그러나 그보다도 짧은 기간 재직한 법무부 장관이 5명이나 된다. 최단 기록은 2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 임명된 안동수 전 장관이 세웠다.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충성 의지를 밝힌 문건이 유출돼 43시간 만에 옷을 벗었다. 비서의 착오로 청와대로 보낼 팩스가 한 방송사로 전달됐다. 메모에는 “정권 재창출에 몸바치겠다”는 등 시대착오적인 문구가 여럿 들어갔고, 국민의 조소에 직면한 청와대는 바로 조치를 취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도 1993년 2월 법무장관에 취임했다가 9일 만에 물러났다. 딸이 외국인 특례전형으로 이화여대에 입학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이 들끓자 옷을 벗었다.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은 `옷로비 스캔들'에 휘말린 김태정 검찰총장의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그러나 파문이 갈수록 커지자 임명 14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취임한 정치근 전 장관은 33일 만에 교체됐다. 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으로 악화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희생양이 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전두환 정권이 기용한 김석휘 전 장관은 4개월여 만에 옷을 벗었다. 검찰이 미 문화원 점거농성사건으로 구속된 대학생들을 관대한 혐의로 기소한 것이 발단이 됐다. 검찰은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당시 안기부의 강력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학생을 공무집행방해 등 일반 범죄로 기소했다. 김 전 장관은 국회 상임위에서 검찰 기소를 두둔하는 소신을 밝혔다. 기소된 학생들이 법정에서 소동을 일으키자 폭발한 청와대는 바로 다음날 장관을 해임했다.

검찰총장은 직제상 법무장관의 지휘를 받는 하부 직위이다. 그러나 법이 신분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청와대가 목줄을 틀어쥔 법무장관에 뒤지지 않는 무게감을 지닌다. 검찰총장은 검찰청법에 따라 1988년부터 2년 임기를 보장받으며 검찰수사를 총괄한다. 장관은 총장만을 지휘할 뿐 개별사건에 일일이 개입할 수 없다. 지난 박근혜 정권이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수사하며 번번이 정권에 반기를 든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갈아치우지 못한 이유도 바로 임기제 부담 때문이었다. 결국 혼외아들 의혹과 법무부 감찰 카드로 압박해 물러나게 했지만, 국정농단 정권조차도 검찰권의 독립을 규정한 법정신을 훼손하지는 못했다.

참여정부에서 기용된 송광수 전 총장은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려는 청와대와 법무부에 맞서 “내 목부터 치라”며 각을 세웠지만 2년 임기를 채웠다. 문무일 직전 총장 역시 검·경수사권 조정을 놓고 청와대와 내내 갈등을 빚었지만 임기는 온전하게 유지됐다. 장관이라면 목이 열 개라도 모자랐을 것이다.

최근 법무·검찰개혁위가 사실상의 검찰총장제 폐지를 골자로 한 검찰개혁 권고안을 발표했다.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회수해 고검장들에게 분배하고, 법무장관이 고검장을 지휘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무소불위의 검찰총장 권한을 분산하겠다는 취지지만, 법무장관이 검찰총장까지 겸직도록 하는 개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의 절대권력이 툭하면 도마에 오르지만, 인사권과 감찰권만으로도 검찰총장을 `식물총장'으로 만들어버린 법무장관의 위세가 더 막강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앞서 단명한 법무장관들을 언급했듯이 법무장관은 정권에 종사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게다가 현 추미애 장관처럼 직업 정치인인 집권당 국회의원이 법무장관을 맡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장관에게 수사지휘권까지 몰아주겠다니 검찰개혁에 동의해온 참여연대와 경실련 같은 진보적 시민단체까지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개혁위는 법무장관 권한을 견제하고 보완하는 방안들도 더불어 발표했지만 미진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검찰총장의 임기와 권한을 법률로 보장한 취지부터 헤아렸으면 좋겠다. 정치권력에 검찰권력을 넘기면서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말할 수는 없다. “검찰총장 권한 분산에만 눈이 멀어 검찰개혁의 본질을 망각했다”는 경실련의 비판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