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거리
마음의 거리
  • 박사윤 한국어강사
  • 승인 2020.07.30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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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사윤 한국어강사
박사윤 한국어강사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온종일 내리는 비를 보며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우리의 생활이 많이 달라진 지 6개월이나 되었다. 처음에는 외출 자제를 권하는 분위기에서 길었던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바뀐 지도 한 달여 간의 시간이 흐른 뒤 지역별로 확진자가 많아지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의 격차가 커진다.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로 바꾸고, 그 대신 1, 2, 3단계로 격상시키거나 완화하기도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두려움과 걱정스런 마음으로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만 머무르는 등 사람과 접촉을 하지 않았다. 점점 확진자가 많아지면서 사람과의 대면을 꺼리는 분위기로 변했다. 전 국민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거나 접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확진자의 수가 대폭 줄어들었다.

느슨해진 틈을 타서 젊은 사람들 사이에 감염이 확산하여 다시 심각 상태로 변해갔지만 더는 등교를 연기할 수 없다는 교육부의 선택으로 학교의 등교개학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무너지다 보니 경제적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확진자가 나올 것을 대비한 상태로 일상생활의 복귀가 시작되어 나름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확진자가 늘고 줄기를 반복하며 평범한 일상이 아닌 또 다른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들이 사람과의 거리도 멀게 했다. 친구에게 전화하고 싶어도 괜히 민폐를 끼치게 될 것 같아 안 하게 된다. 대면이 아닌 전화인데도 연락까지 안 하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요양병원 계시는 친정엄마를 못 뵌 지도 두 달이 넘었다. 고령자와 만성질환자들로 가득한 요양병원의 생활은 감옥 아닌 감옥인 듯하다. 처음에는 전화라도 자주 드렸지만 그것도 점차 뜸해지게 되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친정엄마의 마음에 차지 않은 것 같았다. 전화라도 드리면 `여기저기 아프다', `소화가 안 돼서 밥을 못 먹겠다.'등 넋두리가 시작되었다. 그건 자식들이 보고 싶다는 뜻이다. 병원에는 보호자 면회를 일체 차단하고 있는 상황이라 어찌할 수 없는 줄은 아시면서도 자꾸 짜증을 내신다.

경로당이 폐쇄된 지도 여러 달이 되었다. 일 때문에 방문해야 하지만 어르신들을 만나러 가거나 찾아뵙는 일도 서로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되어 만남을 꺼리게 되었다. 점점 사람의 거리가 멀어지다 보니 마음의 거리까지도 멀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처음에는 답답하고 불편하더니 이젠 적응된 듯하다. 그냥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가끔 문자로 지인들에게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으면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는 대답들이 대부분이다.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연락이 닿으면 잘 지낸다고 대답하지만, 그것이 본심이 아니라는 걸 모두 잘 알고 있다.

며칠 전 요양병원에 계시는 친정엄마를 만나 뵙고 왔다.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휠체어에 앉아있는 친정엄마의 모습을 바라만 봐야 하는 상황에 놓인 현실 앞에서 마음이 숙연해졌다. 두꺼운 가림막에 손을 내밀며 손이라도 잡자는 친정엄마의 말에 내 손을 내밀었다. 잡히지 않는 손을 잡으려는 엄마를 보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주 오겠다는 내 말에 바쁜 데 뭐 하러 오느냐는 맘에도 없는 말씀을 하신다. 그렇게 10여 분만에 면회가 끝났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순 없었다.

오늘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선뜻 전화를 하지 못하는 것이 정작 나뿐이 아닐 게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도 행동까지 소극적으로 변해 가는지 모르겠다. 보이지 않은 바이러스와의 전쟁 속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물어볼 곳이 없다는 게 더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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