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로 듣는 멸치볶음
피아노로 듣는 멸치볶음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1팀장
  • 승인 2020.07.28 1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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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1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1팀장

 

지난해, 젊은 뮤지션들이 창작곡을 발표하던 날 비가 왔다. 부슬부슬 내리다가 갑자기 장대비가 내리며 요란을 떨었다. 장대비였다가 가랑비가 내리고, 회색빛 짙은 비구름이 건물지붕으로 내렸다.

올해는 오디션이 있는 전날 밤, 밤새 태풍에 가까운 비바람이 몰아쳤다. 건물 사이를 무섭게 비집고 들이치는 돌풍. 거대한 둥구나무를 뿌리째 흔들어대는 바람에 속수무책이다.

“준비하신 곡명은” “멸치볶음입니다. 주어진 일상에 감사한 이야기입니다.”

“네, 준비되었으면 시작하세요! 피아노로 듣는 멸치볶음입니다.”

“엄마가 만들어준 멸치볶음, 어쩌다 어리광부리는 내 모습…. 주어진 하루에 쳇바퀴 돌 듯 반복된 시간에 사는 거라며, 당연하게만 여겼던 모든 것들이 나에게 주어진 행복인걸”

“추가 곡 더 들려줄 수 있을까요?”

“비 오는 날인데 `빨간 우산'을 들려 드려도 될까요?”

“새빨간 우산을 샀어 너와 만날 때 가져갈, 우리들 그 속에서 소곤 소곤소곤 이야기 나누겠지. 조그만 무지개는 떴어 우산을 사버렸는데, 비는 벌써 그쳐버렸고 내 발걸음도 멈췄어….”

밤새 모든 것을 날릴만한 기세로 몰아쳤던 비는 멈췄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거세게 몰아치던 비는 피아노 건반으로 내렸고, 오디션 현장의 무거운 정적의 공기를 움직였다. 그리고 숲 속의 안개가 되어 가슴으로 잔잔하게 젖어든다. 이내 촉촉이 젖은 이끼가 된다.

공기를 가르는 피아노의 빗방울은 거친 숨을 고르게 한다. 익숙한 곡과 노랫말이 아닌 젊은 뮤지션들의 젊은 이야기와 몸짓이 시리지만 싱그럽다. 몸은 더워졌고 머리는 상쾌하다. 복개했지만 예전의 작은 도랑물이 돌과 풀숲을 헤치고 흘러 내려간다.

비가 다소곳해진 아침나절부터 오후 내내 비는 쏟아 붓기를 주저했다. 짙은 회색이 되어 내려앉다가도 어느새 하늘을 드러냈다. 못내 아쉬웠든지 안개비였다가, 이슬비였다가, 는개가 되었다.

젊은 뮤지션들이 창작곡으로 현장 메우기를 반복한다. 비도 덩달아 오락가락하며 시간은 흘렀다. 주저하던 비는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실비로 우산 위를 두드린다. 우산 위 빗방울은 창고 옆으로 나 있는 도랑으로 주저 없이 흘러간다. 어릴 적 짐상골(정상골)도랑의 물소리가 여운을 모아 졸졸졸 흐르다 시원하게 소리를 낸다.

30여 팀이 참가한 지역의 젊은 뮤지션 현장. 오디션은 100여 평 남짓한 공간을 온종일 메웠다. 부드럽고, 깊은 여운을 주고, 힘 있는 몸짓에 모두가 숨조차 멎었다. 지난밤 요란하던 비는 멈추고도 잔디에 풀잎에 매달렸다. 높이를 달리하며 듣기를 청한다.

뮤지션이 준비한 이야기로 가득 찬 공간에서 부풀었던 가슴을 풀어헤친다. 비를 맞이하고 더 파릇파릇해진 잔디와 그 사이를 열심히 비집고 자리하는 잡초들. 밤새 두드렸을 비를 아침이슬인 양 달고 흠뻑 젖어 있다. 회색 하늘이 답답할 듯한데 싱그런 풀내음을 내뿜는다. 가슴이 시리다.

익숙하고 당연했던 이야기가 벅찬 행복으로 채워졌다. 우린 살아가면서 아주 작은 일에 상처를 받고 즐거움을 얻는다. 살아내는 모든 순간이 소중한 것을 알면서도 자신으로 인해 변한다.

“당연하게만 여겼던 모든 것이 못났고, 모든 것이 예쁘다. 마음을 열지 못한 이유로 나를 너무 미워한 탓, 당연하게만 여겼던 모든 것들이 나에게 주어진 행복인걸. 마음을 열지 못한 나의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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