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남 2
물러남 2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0.07.2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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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삶의 현장을 떠나면 삶으로부터 물러날 일이 기다린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생명체들은 태어나고자 하며 어떻게든 죽지 않으려 한다. 그럼에도 다 죽는다. 영혼이 불멸한다는 철학자들의 이야기는 다 거짓이다.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죽음에 대비할 수 있다.

죽는다는 사실을 거부하면 그 사람은 죽음의 문제를 피하게 된다. 삶에 바쁜 사람들은 죽음을 직시하고 씨름하는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삶의 현장에서 물러난 사람은 안 바쁘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생기는 건 없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에 대한 사변(speculation)적 성찰에 몰두할 수 있다.

죽음에 대해 무슨 씨름을 해야 하나? 가장 가까운 궁금증:왜 죽지? 황당하지만 이런 고민을 한 사람들이 있다. 기독교에서는 사람이 죽는 건 원죄 때문이라고 답하고, 불교에서는 태어났기 때문에 죽는다고 한다.

원죄 때문에 죽는다고? 원래 피조물로서의 인간은 흙으로 돌아가지 않게 되어 있었다. 곧 죽지 않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어서 그 죄과로 죽게 된다. 그럼 안 죽으려면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으로 돌아가면 된다. 선악과 따먹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걸 기독교에서는 구원이라고 한다. 구원을 받으려면? 자기를 버리면 된다. 곧 선악 판단의 주체로서의 나(我)를 없애면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면 안 죽는다. (永生)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말한다.

불교에서는 태어났기 때문에 죽는다고 한다. 그럼 안 죽으려면 안 태어나야 된다. 왜 태어나지? 꽤 심오한 성찰이 있어야 답할 수 있는데, 이걸 말로 그대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일단 태어나는 건 덩어리로 뭉쳐야 된다. 살덩어리가 있어야 태어난다. 이는 씨앗을 뿌렸을 때 조그만 것이 점점 더 덩치가 커져가는 걸 보면 된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새로운 것이 생겨 덩치가 커지는 건 경이로운 일이다. 그럼 왜 뭉쳐서 커질까? 그건 태어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渴愛) 때문이다. 그런 갈애는 왜 생기는데? 이런 질문을 계속 해가다 보면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이 업(業), 또는 무명(無明)이다. 밝지 못해서 무언가를 짓게 됨으로써 연쇄작용을 거쳐서 생기게 되고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죽는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마음이 밝아져서 아무것도 짓지 않으면 태어나지 않고 그러면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답이다. 무언가가 괜히 일어나는데 원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본래 상태를 깨우치게 되면 생사(生死)의 사슬(chain)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안 죽으려면 뭘 해야 하나? 원래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본 면목을 보면 된다. 참 쉬운 해결책처럼 보인다. 사실 대부분의 깨친 사람들이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쉽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일까? 할 일도 별로 없는데 거기에 매달려서 쉬운 지 어려운지 한 번 알아봐야겠다.

세상으로부터의 물러남에 대해 씨름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 있다. 이건 자기만이 할 수 있고,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삶은 함께하지만 죽음은 혼자 맞아야 한다. 부모·형제, 처자식, 친구, 원수가 이 문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롯이 홀로 가야 하는 길이다. 홀로 있어야 갈 수 있으니 사람을 구하러 다닐 필요가 없다. 적막한 어둠을 혼자 들여다본다고 상상해보라. 어찌 심심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이 일은 실행에 옮겨야만 효과가 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건 모든 사람이 안다. 그렇지만 실제로 착하게 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죽음에 대해 아무리 많이 알아도 죽음을 실제로 넘어서지 않으면 죽음이 두려운 법이다. 말년에 세상 물러나는 일에 본격적으로 몰입해보자. 다 털고 죽기 살기로 가보자. 최악의 경우 죽기밖에 더하겠어?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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