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값
청춘의 값
  • 추주연 청주교육지원청
  • 승인 2020.07.22 18: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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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청주교육지원청
추주연 청주교육지원청

 

`빗길주의! 20% 감속운전!'고속도로 구간마다 커다랗게 붉은색 글씨가 깜박인다. 배수가 잘되지 않는 도로에 빗물이 흥건하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속도를 더 줄인다. 때 이른 장마가 시작된다는 일기예보와 달리 하늘만 꾸물거릴 뿐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더니 하필 지금 장대비가 내린다. 오늘은 아들이 입영하는 날이다.

길을 나서는데 아들은 몇 번이나 집에 다시 들어간다. 깜빡 놓고 온 물건이 엘리베이터에서 생각나고, 주차장에서 생각나고, 출발해서 한참을 가다가 생각난다는 것이다. 평소 같으면 준비성 철저한 남편의 잔소리가 여러 번 날아갔을 텐데 오늘은 순순히 차를 돌린다.

우여곡절 끝에 출발. 멀미가 심해 차에 타면 의자에 머리를 대기 무섭게 잠들던 나는 도무지 잠이 들지 않는다. 평소엔 뒷좌석에서 내내 신나는 노래를 흥얼거리던 아들 녀석이 창밖만 바라본다. 남편도 운전대를 꼭 쥐어 잡고 별말이 없다.

입대 전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춘천으로 향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백일도 안 지난 갓난아이를 친정 엄마에게 맡기고 복직을 했었다. 아들을 보러 청주에서 춘천까지 주말마다 4시간씩 달려갔던 길인데 아들의 입영을 위해 그 길을 다시 달려가고 있다.

아들이 태어난 해는 2000년,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던 해다. `밀레니엄 베이비'라고 불리던 `즈문둥이'들이 청년으로 자랐을 때는 통일이 되어 의무 입대는 없지 않겠냐고 했었다. 상상보다 빨리 변하는 세상이지만 도통 실현되지 않는 상상도 있다.

아들은 할머니가 차려준 아침밥을 연신 맛있다며 먹는다. 있는 반찬 차렸을 뿐이라는 할머니에게 세상에서 할머니 반찬이 제일 맛있다고 말한다. 자기 방 청소도 안 하는 녀석인데 할머니 마음 챙기는 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드디어 화천 훈련소로 출발. 춘천을 벗어나자 눈에 보이는 것은 좁은 들과 가파른 산뿐이다. 풀과 나무는 어제오늘 내린 비를 흠뻑 머금어 초록이 짙어졌다. 밤새 한 뼘 자란 나무를 본체만체하고 혹시나 길을 잘못 들어설까 도로 표지판을 노려보듯 본다.

늦을까 봐 일찌감치 출발한 길이라 입소까지 한 시간 넘게 남았다. 하는 수 없이 가까운 읍내 카페에 들어갔다. 아들은 화장실을 자꾸 들락거린다. 카페에서 나와 다시 훈련소로 향했다. 훈련소가 가까워지자 군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입소식도 없이 `드라이브 스루'방식으로 내려주면 그만이다. 훈련병만 내리라는 말에 아들은 훌쩍 차에서 내렸다. 제대로 인사도 못했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아들의 어깨가 뾰족하게 좁아 보인다.

원하는 공부를 하게 된 대학 생활을 한창 누리던 아들이었다. 처음 해보는 것이 많아 인생이 신난다고 말하던 요즘이다. 군 입대는 그 모든 것들을 잠시 멈추게 한다. 그 덕분에 유지되는 평화일까? 청년들의 청춘이라는 비싼 값을 치르고 얻는 것이 평화이길 바란다. 평화를 위한 과정이 평화롭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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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호 2020-07-23 04:53:12
제대 한지 2년 밖에 안지났지만 참 소중했다고 기억되는 시간입니다. 무사히 제대하길 바라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