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 길
'집'으로 돌아가는 길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7.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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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집'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집'이어야 했다.

23차례의 처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한 부동산 정책에 대한 나의 분노는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불안에서 시작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며 역대 최장수라는 역사를 만든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의 처음 화두는 무언가 달랐다. `아파트가 돈이 아니라 집이어야 한다'는 취임사는 그때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을 만큼 호기로웠다. 문제는 그 지극한 상식이 한국사회에서 전혀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아주 오래도록.

대통령까지 나서면서 진화한 그린벨트 해제 논란은 `집값'을 둘러싼 관료들의 대표적인 자기 방어를 위한 원칙의 무시에 해당한다. `집값'이 오르는 이유를 공급 부족으로 치부하면서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다주택과 `똑똑한 집'에 대한 탐욕은 내려놓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은 2013년부터 꾸준히 오르면서 2018년 통계기준으로 이미 104%를 기록했다. 수치상으로는 이미 시장에 공급된 주택의 수가 일반 가구 수를 넘어섰다. 굳이 수요-공급의 원론적 경제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은 이미 상식과 원칙이 무너지고 있음과 다름없다.

물론 오래전에 지어진 낡은 집과 심지어 반지하와 판잣집 등 지극히 열악한 주거 공간도 주택 수에 포함되니 더 좋은 집을 갖고 싶은 희망의 수요는 있겠다. (2018년 주거실태조사에서 나타난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는 전체의 5% 수준인 111만 가구로 나타났다.)

그러나 누군가는 한 도시에 여러 채의 `집'을 사들이는 탐욕의 와중에 국민 10가구 중 4가구에 해당하는 그 누군가는 여전히 `자기 집'이 없는 불평등과 불균형, 그 비원칙과 몰상식이 견고하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공개한 지난해 도시계획현황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국민은 10명 가운데 9명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그렇게 절대다수의 국민이 바글바글 몰려 사는 도시는 국토의 16.7%에 불과하다. 급기야 집권당 원내대표가 국회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고 수도권 과밀화에 따른 지역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하자는 제안이 나오는 걸 보니 사안의 심각성에 대한 만시지탄이 절로 나온다.

월급이 오르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건 국민 대다수가 이미 상식으로 받아들이는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노동 없이 소득이 생기거나, 심지어 늘어나는 경우 도둑놈 심보로 비난받을 수 있다는 것 역시 무리일 수 없는 인지상정이다. 작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집인데 그 가격이 두 배가 되었다면 당연히 불로소득인데, 이러한 상식의 흐름에 `집값'은 예외로 여기는 편견을 바로 잡아야 한다. 가구당 한 채씩 나누어 가져도 4%가 남아도는 `집'을 누군가 더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집'에 대한 세제정책의 허술함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투기를 통해 `집'의 가격상승을 부채질하는 탐욕은 불로소득의 전형이므로 세금을 통한 환수는 지극히 상식이다.

다행히 중단되었으나 그린벨트 해제를 거론하고, 국방부 소유 태릉골프장 부지의 활용 등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수도권의 주택공급 확대로 집값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부동산 시장 불패'의 사고방식이 신화처럼 살아있고, 힘 안 들이고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행심과 투기에 가까운 투자를 통해 `부동산'을 재산 증식의 유일한 기회로 삼을 수밖에 없는 병폐를 고치지 않은 상태에서 늘어나는 주택 공급이 실수요자에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집권여당 원내대표 연설에서 언급한 대로 개헌을 해서라도 인구 절반이 몰려 사는 수도권의 과밀화 해소와 행정수도의 확실한 이전을 상징으로 삼는 인구분산 정책이 필요하다. 지방은 서울에 비해 집값도 비싸지 않고 빈집도 많다. 나는 `부동산'이라는 단어가 싫다. 차라리 이 나라에서 `부동산'이라는 신기루 같은 용어를 모두 없애고 `집'과 `토지'를 따로 구분하면 어떤가. `집'은 오로지 가족과 더불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안식처로, `토지'는 일정부분 자본재로 기능할 수 있도록 역할을 나눌 수는 없는가. `집'은 사람이 평등, 상생, 그리고 나눔의 마음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곳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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