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이름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0.07.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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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어떤 이는 아버지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무렵 등을 대하는 순간이 있었다. 먹먹함이 눈앞을 캄캄하게 했다. 툭 불거져 나온 등뼈가 아버지의 등을 한없이 작고 쓸쓸하게 만들고 있었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그다지 살갑지도, 그렇다고 가슴 저린 추억을 남겨 놓지도 않으셨다. 그런 것일까. 아버지의 자리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자식에게 힘이 되어 주는 사실이 말이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랜더스의 `나의 아버지는 내가'라는 글을 보면 아이가 아버지를 믿음으로 존경하는 것은 다섯 살 때까지라고 한다. 여섯 살이 되면서부터는 점점 아버지의 말에 불신하게 된다. 하지만, 아들의 나이 서른이 되면서부터는 아버지의 존재가 점점 커지다가 쉰 살이 될 무렵에는 미처 몰랐던 크나큰 아버지의 자리를 실감하면서 후회한다는 것이다.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랜더스의 말에 수긍이 간다.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존재란 그저 필요 요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그렇게 아이는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 아버지가 된 후에야 비로소 아버지의 자리를 깨치게 되는 진리를 우리 어른들은 이미 체득했으니 말이다.

얼마 전 `아들과 아버지'란 책을 읽었다. 지은이는 고인이 된 박목월 시인과 그의 아들 박동규 문학박사다. 책의 전반부에는 아버지의 일기가 실려 있었다. 수술실에 들어간 아내를 기다리며 자신이 얼마나 그동안 무심했는가를 반성하는 고백서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6·25동란을 겪으면서 아내와 자식들과 헤어져 있어야만 했던 괴로운 마음도,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언제나 진솔하고 소박한 삶을 살고자 했던 모습도 일기장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책의 중반부터는 아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추억, 그리고 아버지의 작품을 통해 나타난 가족애를 아들은 꼼꼼히 설명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목월 시인은 보는 이 없어도 은은한 향기를 품고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들 찔레처럼, 무성하게 어울려 사는 쑥대밭처럼 살기를 소망했다. 그렇게 소박하면서도 당당하고자 했던 아버지의 삶을 아들은 깊은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현대를 사는 많은 가족은 바쁘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무관심해지고 대화도 단절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박목월시인 부자의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게 배달된 한 권의 동화라는 느낌이 든다.

신혼시절, 남편은 내 부른 배를 보고 아들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들이 생기면 하고 싶은 것이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 첫째는 목욕탕에 같이 가서 아들에게 자신의 등을 맡기는 것이고, 둘째는 낚시를 가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 남편은 정말로 아이가 들 수 있는 작은 낚싯대도 장만했었다. 남편과 아들은 초등학교까지만 해도 목욕탕을 같이 다녔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아이는 친구와 놀기를 더 좋아하고, 아버지가 한참을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낚시를 따라가곤 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세상을 보고 자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이 훨훨 날 수 있는 하늘도 되어 주어야 하고, 거침없이 푸른 물살을 가르고 나갈 수 있는 강물도 되어야 한다. 때론 더 깊고 넓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매서운 비바람이 되기도 한다.

나는 믿는다. 훗날 나의 아들도 넓은 세상을 마음껏 유영하다 보면 아버지의 듬직했던 등이 생각날 것이다. 그래서 박목월 시인의 부자가 그러했듯이 언젠가는 나의 아들도 왜 아버지라는 이름이 뒷동산의 바위가 되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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