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림
비자림
  • 최운숙 수필가
  • 승인 2020.07.20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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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최운숙 수필가
최운숙 수필가

 

느닷없는 제안이었다. 그 제안은 나를 들뜨게 했고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날 비행기에 올랐다. 멀미하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창가에 앉히고도 내 안색을 살핀다. 잠깐도 못 버티는 내가 참 미안해진다.

제주도에 자주 와본 그녀는 이곳 지리를 꿰차고 있다. 걷기를 즐기는 나를 배려해 비자림이 좋을 것 같다고 한다. 혼잣말처럼 창 넓은 찻집에서 한나절을 쉬어도 좋을 것 같다는 그녀는 어쩌면 쉼이 필요하여 여행을 제안했는지 모른다. 사람은 보여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화사한 햇살처럼 밝은 그녀도 가끔은 집 밖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무심한 듯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지만, 속내를 읽을 수 없다.

비자림. 주차장은 한산했다. 입구의 이름표가 반갑게 맞아주는 것 같아 약간 들뜬 마음으로 숲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커다란 나무가 인사를 한다. 구부정 등은 굽었지만 엄격하고 단호한 얼굴이다. 마치 이곳을 수호하듯 근엄한 표정이다. 아마도 몇백 년을 문지기처럼 지켜 서 있었을 것이다. 숲을 지나는 낮달은 운치를 더해주고, 양옆으로 선 비자나무는 지붕처럼 내려앉은 하늘을 받치고 있었다.

얼마쯤 들어가자 벼락 맞은 비자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벼락을 맞아 반은 불에 타고 나머지 반으로 몇백 년을 살아왔다니 놀라운 일이다. 나무는 벼락 맞을 확률도 아주 낮지만,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기는 더 힘들다. 반쪽을 잃은 나무는 옆 나무에 의지해 살아온 것이다. 친구를 받쳐주며 오랜 세월을 함께한 그들은 암수가 함께한 연리지가 되었다. 그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의 힘이 아니었을까.

비자림은 그 호젓한 숲길 때문에 탐방객이 많이 찾는다. 천연림에 사람의 손길이 더해져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길 중 하나가 되었다.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빗물이 지하로 흘러들어 가는 숨골을 지나 이 숲에서 수령이 가장 오래된 비자나무를 만나게 된다. 800년의 그 위엄에 긴장과 감동을 하게 된다.

또한, 맨발로 자박자박 숲길을 걷노라면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행복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숲이 가지고 있는 고요와 평화로움 때문일 것이다. 숲으로 빨려들어 나무가 된 듯한 착각이 빠졌다. 마치 나무의 손이 내 손을 잡아주는 것 같았다. 나무의 등에 손을 올려놓자 따뜻함이 전해진다. 나무는 숲이라는 이름만이 아닌, 작고 상처 난 생명을 보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은 이런 마음속 평화를 예견한 것이 아니더라도 나는 근래 가장 큰 선물을 챙긴 것과 같다.

그녀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녀도 나처럼 숲을 걷는 사이 마음이 가벼워졌으리라. 가끔 우리는 걷는 것만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때가 있다. 더더욱 이런 아름다운 숲에서의 오붓한 걷기란 마음속에 있는 무거움을 훌훌 털어내기에 더할 나위 없다.

여행을 제안한 그녀는 정작 본인보다 내가 더 그것이 필요하여 신호를 보냈는지 모른다. 자기보다 상대를 배려함이 몸에 밴 그녀다. 어쩌면 우리 사이도 연리지처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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