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저주
전문가의 저주
  • 공진희 기자
  • 승인 2020.07.19 1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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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공진희 부장(진천주재)
공진희 부장(진천주재)

 

매일 1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직장에서 밀려나 거리로 쏟아져 나오던 IMF시절, 한 경제학자와 나눈 대화가 문득 떠오른다.

`우리나라에 그렇게 많은 경제학자들이 있는데 왜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을까요?' `인간의 행동이 변수에 포함되면 예측이 어렵습니다. 사후설명적 요소가 강해지지요'

특정 분야에 대해 일반인보다 지식과 경험이 많은 사람을 전문가라고 부른다.

전문가는 일반인에 비해 조직화된 지식을 갖고 있어 외부에 드러난 현상을 원리와 경험에서 관찰하고 문제를 빨리 해결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많은 돈을 지불하며 문제 해결을 의뢰한다.

그러나 전문가가 비전문가보다 항상 뛰어난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전문가가 뛰어난 수행 능력을 보이는 경우는 그 문제가 전문가의 지식 구조와 행동 특성에 잘 어울릴 때 가능하다. 이러한 틀이 유지되는 상황, 즉 예측 가능한 시장에서 전문가들은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 다가오면 과거의 전문성은 소용이 없으며, 집단의 심리적 편향에 의한 오류는 항상 발생할 수 있고, 미래를 단순하게 바라봄으로써 상황이 예측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될 돌발 변수를 쉽게 간과한다.

스탠퍼드대학의 힌즈(Pamela J. Hinds) 교수는 이를 전문가의 저주(The curse of expertise, 1999)라고 했다.

그녀의 연구에 따르면 작업성과를 예측하는 실험에 있어서 전문가 집단은 지식이 일천한 신참자보다 못한 예측결과를 보였고, 과업의 완료시간을 추정하는데 있어서 정확도가 가장 떨어졌으며, 새로운 대안을 생각하는 일에도 저항하는 태도를 보였다.

특이한 일은 중간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이 가장 정확한 예측을 했다고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엘리자베스 뉴턴(Elizabeth Newton)은 19 90년 `두드리는 자와 듣는 자(Ta pper and Listener)'란 실험을 했다.

한 사람이 이어폰으로 크리스마스캐럴과 같이 누구나 아는 120곡 정도의 노래를 탁자를 두드리는 방식으로 들려주었다.

탁자를 두드리는 사람은 듣는 사람이 연주한 노래의 50% 이상은 맞힐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 듣는 사람은 2.5% 정도의 곡만 알아맞혔다.

듣는 사람은 그저 박자만 듣게 되지만 두드리는 사람은 마음속에 생각한 리듬을 근거로 상대방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아예 모르거나 적게 알고 있는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는 데에 무능하기 때문에 그런 착각이 쉽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 wledge)'라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구촌이, 우리의 일상이 급변하고 있다. 가보지 않은 길, 그래서 두렵다. 하여 중간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이 가장 정확한 예측을 했다는 힌즈 교수의 실험결과에 주목하게 된다.

보편적 상식에 입각한 초보자의 지혜가 자신의 사고의 틀에 갇힌 전문가의 지식보다 유리할 수도 있다.

훈수를 두는 하수가 실전을 벌이는 고수보다 흐름을 더 잘 읽는다.

개방과 공유, 소통과 융통성으로 지혜를 융합하면 전문가의 지식을 능가할 수도 있다. 그러니 굳이 예측하려 애쓰지 말고 우리 자신을 믿고 무한경쟁보다 협동과 협력으로, 속도보다 방향으로, 승자독식보다 나눔과 배려로, 익숙하지 않은 이 길을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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