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절반 위에 서서
한 해의 절반 위에 서서
  • 신미선 수필가
  • 승인 2020.07.1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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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수필가

 

지난 정월 초 남편은 필리핀으로 일주일간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십여 년 넘게 직장동료로 구성된 스킨스쿠버 동호회에서 떠나는 단체여행이었다. 일주일간의 달콤한 휴식을 위해 남편은 겨우내 열심히 일했고, 웬만하면 정시퇴근을 해 혼자 떠나게 된 여행에 대해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미안함을 덜어보려 노력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일주일에 두 시간씩 글을 배우러 다니는 수필교실의 스승님도 그즈음 해외에 계셨다. 멀리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계셨다. 스승님은 여행지에서의 색다른 경험과 일과들을 수시로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보내주며 일상들을 공유했다. 정월의 대한민국은 아직 눈이 내렸고 찬바람이 거셌지만, 스승님께서 딛고 계신 땅 위에선 온갖 자연이 그대로의 모습으로 평화로운 낭만의 여름이었다.

남편이 떠나기로 한 날짜가 일주일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심상치가 않았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라는 생경한 단어가 뉴스에 오르내리며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렸다.

언론매체에서는 실시간으로 이 낯선 바이러스에 대해 보도의 분량을 늘려 갔다.

검사자가 늘어나고 확진자 숫자가 더해가면서 사망자도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남편은 그토록 가고 싶었던 동호회 해외여행을 포기했고, 스승님은 긴 여행을 끝내고 입국과 동시에 자가격리에 들어가셔서 모든 인사를 글로 대신하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겪은 봄 중에서 가장 최악의 봄이었다. 온 들판이 봄꽃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겨우내 숨죽여 은둔해 있던 나무들도 앞다퉈 새순을 틔우고 초록 잎을 달며 생기를 찾으며 생명이 움트느라 모든 자연이 분주하건만 우리의 일상에는 봄이 오지 않았다. 확진자의 동선이 재난문자를 통해 공개되면서 개인의 사생활은 그야말로 사생활이 아니었다. 공공장소의 공공 모임이 불안과 공포로 변했으며 자유로이 마음만 먹으면 오갈 수 있었던 여행에도 제약이 따랐다. 저마다 처음으로 겪게 된 낯선 불편함에 피로감을 호소했다.

따뜻한 봄을 넘어 기온이 올라가면 점차 바이러스는 힘을 잃고 사라질 것이라 믿었다. 밖에서는 한창 봄이라고 아우성인데 한정된 공간에 갇혀 제한된 생활반경의 규칙을 지키며 시간을 보내기가 더는 어려웠을 것이다. 간간이 꽃놀이를 떠나는 여행객들이 눈에 띄고 교회에선 주일예배가 시작되었으며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나서는 일부 사람들은 마스크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주춤하던 바이러스가 지역사회로 다시 확산하는 모양새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과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는 `무사유'의 위험에 대한 메시지다. 그녀는 또한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의무'라고 강조했다.

터널의 끝에는 반드시 빛이 있다. 여전히 어둠의 바이러스는 우리의 곁에서 호시탐탐, 시시각각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지만, 그의 뜻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선 타인을 지켜 나를 보호하는 것이다. 아무리 작고 사소할지라도 나의 행동 하나가 타인에게는 어떤 영향력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으로 사회적 약속에 의무를 다한다면 우리의 하반기는 예전의 평범했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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